철조망으로 둘러싸인 스리랑카 북부의 마니크팜 수용소에 갇혀 있는 타밀족 주민들의 초췌한 모습. 26년에 걸친 스리랑카 정부와 타밀족 반군의 내전은 5월에 끝났지만 전쟁을 피해 탈출한 타밀족 30만 명은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수용소에서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다. 마니크팜=AP 연합뉴스
스리랑카 정부-타밀반군 26년 내전 끝났지만
구타-영양실조 시달려… “벌써 1000명 넘게 숨져”
유엔 석방 촉구… 정부 “그곳은 복지센터” 느긋
26년간 계속된 스리랑카 정부와 타밀족 반군의 내전이 끝난 지 4개월이 지났다. 하지만 반군 장악지역에서 탈출한 약 30만 명의 타밀족은 여전히 정부가 설립한 수용소에 갇혀 있다. 정부는 수용소를 ‘복지센터’라고 부르지만 수용자들은 ‘감옥’이라고 말한다.
이들은 철조망으로 둘러싸인 수용소 안에서 군인들의 감시를 받으며 영양실조와 물 부족 등으로 고통을 받고 있다. 외부 접촉이 차단돼 다른 수용소에 있는 가족조차도 만나지 못하는 생이별의 아픔을 겪고 있다. 유엔을 중심으로 국제사회는 스리랑카 정부에 “수용자들을 빨리 고향으로 돌려보내라”고 압박하지만 정부는 별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 “수용자 1000명 이상 숨져”
5월 스리랑카 정부와 타밀족 반군의 전투가 격렬해지자 반군이 장악한 동북부 해안지역에 거주하던 주민들은 교전지역에서 탈출했다. 이들은 대부분 타밀족이다. 스리랑카 정부는 이들을 41곳에 나눠 수용했다. 최대 수용소인 북부 바부니야 근처의 ‘마니크팜’에는 약 23만 명이 수용돼 있다. 스리랑카 정부는 주민들 속에 숨어있는 타밀족 반군과 협력자들을 색출한다는 이유로 이들을 계속 조사하고 있다. 지금까지 약 1만5000명만 수용소에서 풀려난 것으로 알려졌다.
스리랑카 정부가 언론과 구호단체의 접근을 철저히 막고 있는 가운데 영국 일간 가디언은 최근 수용소에서 풀려난 주민들을 인터뷰해 수용소의 실상을 전했다. 마니크팜에 4개월간 수용됐던 22세 여성은 “먹을거리가 부족하고 깨끗한 물도 없다. 경계병들이 별 이유 없이 수용자들을 총으로 마구 때리는 등 밤낮없이 괴롭힌다”고 토로했다. 바부니야의 의사들은 “지금까지 주로 영양실조로 수용소 내에서 1000명 이상의 주민이 숨졌다”고 말했다. 수용소에 밀반입된 휴대전화로 통화가 됐다는 한 수용자는 “기자들에게 말을 했다는 이유로 두 가족이 끌려간 뒤 돌아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국제사면위원회(앰네스티)는 “주민들은 지저분하고 과밀 상태인 수용소에서 무장군인들의 감시를 받으며 지내고 있다”며 “10월에 본격적으로 우기가 시작되면 텐트가 물에 잠기고 화장실은 넘칠 것”이라고 우려했다.
○ 느긋한 스리랑카 정부
23일부터 스리랑카를 방문 중인 월터 캘린 유엔 사무총장 인권특사는 25일 마니크팜 등 수용소를 둘러보고 스리랑카 정부 관계자들에게 수용자들을 조속히 풀어줄 것을 요구했다. 이에 앞서 린 파스코에 유엔 정치담당 사무차장도 16∼18일 스리랑카를 방문했다. 국제인권단체인 휴먼라이츠워치는 23일 “유엔 총회와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모인 세계 지도자들은 타밀족 수용자들이 자유를 찾을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마힌다 라자팍세 스리랑카 대통령은 18일 파스코에 사무차장을 만난 자리에서 “내년 1월까지 수용자들을 모두 풀어주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크리스천사이언스모니터는 21일 “타밀족 반군을 소탕한 뒤 열렬한 신할리족(스리랑카의 다수 민족) 민족주의자인 라자팍세 대통령의 인기가 계속 오르고 있기 때문에 내년 대선에서 재선을 노리는 라자팍세 대통령이 서둘러 타밀족을 풀어주지는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장택동 기자 will7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