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서 저격수가 사격을 하기 전에 동그라미 정중앙에 십자가 모양이 나타나는 것을 가끔 볼 수 있다. 총 뒷부분의 ‘가늠자’와 총구 위 ‘가늠쇠’가 정확하게 정렬된 것이다.
주요 20개국(G20) 정상들은 이번 피츠버그회의에서 금융회사의 임직원들에게 과도한 보너스를 주지 못하도록 회원국들에 권고하기로 합의했다. 보수 총액과 회사 실적을 연계하자는 것이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위기의 원인 중 하나가 금융회사의 엇나간 조준선 정렬이라는 점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금융의 세계화가 시작되면서 미국의 월가에서는 최고경영자(CEO)는 물론이고 임직원들이 단기간에 실적을 올려 천문학적인 보너스를 챙기는 사례가 흔해졌다. 임직원의 잘못된 판단 때문에 몇 년 뒤에 회사가 막대한 손해를 봐도 어찌할 도리가 없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잘못을 저지른 사람들은 이미 일확천금을 챙겨 은퇴했거나 승진을 해서 다른 회사로 갔기 때문이다. 가늠자(임직원 개인의 이익)와 가늠쇠(주주의 이익)의 정렬이 틀어지면서 월가의 금융회사들은 표적(국가경제와 회사의 성장)은 놔두고 엉뚱한 곳에 총을 난사했고 결국 경제를 거덜 냈다.
한국의 금융위원회도 G20의 권고를 받아들여 주로 보너스 규제에 초점을 맞춰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하지만 조준선 정렬의 원리가 개인의 이기심과 조직 이익 사이의 조화라는 점을 생각할 때 너무 기계적인 대응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국의 상황은 다르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가 금융공기업 CEO의 보수 삭감이다. 정부는 2년간 공기업 선진화의 일환으로 산업은행장, 수출입은행장 등 금융공기업 CEO의 기본급을 절반 이상 깎았다. 산업은행장과 수출입은행장의 올해 보수는 기본급 1억6131만 원이다. 성과급은 아직 미정이다.
‘신의 직장’의 경영진 보수를 대폭 삭감한 것은 대중을 달래는 효과는 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이들 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릴 소지가 크다. 실력 있는 금융인이 공기업의 CEO로 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무능한 경영자가 회사에 끼칠 손해는 삭감한 보수의 수만 배보다 클 수 있다. “금융공기업의 CEO는 은퇴한 경제관료로만 채워질 것”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우리은행처럼 공적자금이 투입된 금융회사의 직원 보수를 지나치게 깎는 것도 부작용을 부를 공산이 크다. 동종업계 회사보다 보수가 30% 이상 낮은 곳에 좋은 인재가 갈 리도 없고 임직원들은 부족한 돈을 다른 곳에서 보충하려는 유혹이 생기기 쉽다. 인재가 떠나고 내부 비리가 많은 회사의 실적은 당연히 나쁠 것이고 공적자금의 회수도 어렵게 된다.
요즘 금융계 사람들을 만나면 “금융위기를 틈타 경제관료들이 영향력 확대에 골몰하고 있다” “감독당국이 황영기 전 우리은행장을 처벌할 자격이 있느냐”는 말을 심심치 않게 듣는다. 조준선 정렬은 조직이 있는 곳이면 피해갈 수 없는 문제다. 금융담당 관료들도 스스로를 되돌아볼 시점이다.
이병기 경제부 차장 ey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