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일하는 일본 직장인은 잊어라. 1990년대 이후 일본인의 노동은 극적으로 느슨해졌다. 하야시 후미오 도쿄대 교수는 일본 20년 불황의 주원인은 근로시간의 감소라고 지적했다. 일본 정부가 토요일 관청 문을 닫음으로써 이런 길을 선도했다. 일본 은행들이 그 뒤를 따랐다. 1988년부터 1993년까지 주간 노동시간이 44시간에서 40시간으로 10% 떨어졌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이어졌던 일본의 호황은 무너졌다. 2000∼2004년 집권했던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와 다케나카 헤이조 전 경제재정상은 민영화와 탈(脫)규제를 통해 노동시간의 감소 추세를 막아보려 했다. 그러나 이제는 쓸모없어진 1960년대의 발전 모델에 향수를 가진 일본의 강력한 관료조직이 자유시장적 개혁을 막았다. 일본 여론도 개혁이 불평등을 초래할 것이라며 고이즈미에 반대했다. 그러나 이건 허위 보도다. 일본에서 부당한 부의 원천은 민영화가 아니라 부동산 투기였다.
그럼에도 집권한 민주당은 자유시장 정책을 계속 비판해왔다. 하토야마 유키오가 이끄는 민주당의 승리로 미국식 자유시장 모델이 일본 대중에게 인기가 없음이 확인됐다. 하토야마 총리는 경제를 모르는 사람이다. 그에게는 행복이 우선이다. 그러나 이런 감정이 많은 일본인의 정서를 반영하는 것은 사실이다. 하야시나 다케나카의 분석이 옳다면 왜 오늘날 일본은 미국을 따라잡거나 아시아의 발전을 선도하기 위해 더 많은 일을 하려고 하지 않을까.
일본인의 절반 가까운 인구가 은퇴했거나 은퇴연령에 가깝다. 이들은 높은 수준의 안락한 삶을 추구하기 위해 열심히 일했다. 그들 덕분에 ‘잃어버린 10년’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소득은 유럽의 소득보다 높다. 비생산적인 유통부문이 청년층을 흡수하고 있어 실업률은 서구에 비해 낮다. 불경기의 일본은 평화롭고 보수적인 사회로 남아 있다.
다시 고성장 전략을 추구하는 것은 직장인에게 골프 칠 시간을 빼앗고 외국 문화에 익숙지 않은 이 나라에 많은 이민자를 불러오는 것을 의미한다. 일본이 이런 치료를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을까.
대다수 일본인, 특히 늙은 세대는 자신이 건설한 사회에 만족한다. 이들은 미국과 유럽이 돈과 물질적 욕심에 집착한다고 본다. 불황은 진정 일본적인 것으로 남아 있기 위해 지불해야 할 비용으로 받아들인다. 하토야마는 이것을 알았고 선거에서 승리했다.
그러나 일본은 얼마나 오래 이런 조화로운 불황의 기간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 일본의 하이테크산업은 경쟁력이 있다. 이 나라는 여전히 세계 두 번째 수출국이다. 유럽 전체보다 매년 더 많은 특허를 낸다. 1억5000만 명의 인구는 25억 명의 중국 인도인보다 더 많이 생산한다. 그러나 10년 후의 일본은 아시아의 다른 국가와 비교해 현재의 지위를 잃을 수 있다. 평생고용은 물론이고 직장을 찾는 것조차 힘들 수 있다. 10대들은 아버지 세대보다 기회가 없고 아버지 세대의 연금과 의료보험에 돈을 낼 방법이 없다. 일본의 젊은이는 암울한 현실을 탈피하기 위해 허무주의자가 되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아무도 이에 대해 토론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본은 ‘쉬쉬’ 하는 사회다. 언론은 사회분열을 일으키려 하지 않는다. 어려운 질문은 하지 않고 노골적인 대답은 예의 없는 것으로 여겨진다. 외국인의 코멘트는 환영하지만 늘 무시된다. 일본의 선택은 서구인에게 관심사항이 아니다. 그러나 일본의 운명은 경쟁국가인 한국에는 반면교사가 될 수 있다.
기 소르망 프랑스 문명비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