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지법 판사 16명 초등학교 1일 명예교사로
알기쉬운 용어-사례들어 생활속 ‘법률학교’ 정착
“여러분, 법은 왜 필요할까요? 법이 없던 원시시대에는 힘이 센 사람만 활개를 쳤다고 합니다. 약한 사람이 힘센 사람에게 맞아도 어디에 호소할 수도 없었죠. 하지만 현대사회에서는 국회에서 법을 만들어 사회적 약자도 당연히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게 됐죠.”
“‘판사선생님’, 법관이 되기 위해서는 어떤 공부를 해야 합니까?”
25일 오전 10시 대구 수성구 범어동 동천초등학교 6학년 5반 교실. ‘일일 명예교사’로 나선 대구지법 제4민사부 박현경 판사(여)가 초등학생 32명을 대상으로 법률수업을 했다. 학생들은 담임교사를 대신해 교단에 오른 판사선생님과 눈을 맞추고 진지한 표정으로 수업내용에 귀를 기울였다. 박 판사는 법의 개념, 법의 필요성, 법의 종류, 법원이 하는 일 등을 학생들이 알아듣기 쉬운 용어와 사례를 사용해 세심하게 수업을 진행했다. 이 수업은 대구지법 판사들이 이달부터 두 달 동안 지역 초등학교를 돌며 개설하는 ‘찾아가는 법률문화학교’ 프로그램의 일부이다.
24일 대구 중구 삼덕1가 동덕초교 법률수업을 시작으로 11월 중순까지 법관 16명이 명예교사로 나서 법률수업을 실시할 예정이다. 25일 박 판사의 강의는 1시간 가까이 이어졌다. 그가 용의자와 피의자, 피고인 등을 구분해 설명한 뒤 경범죄의 종류도 알려주며 “TV를 큰 소리로 켜놓고 이웃에게 피해를 줘도 경범죄 처벌을 받을 수 있다”고 하자 학생들은 놀라는 표정을 짓기도 했다. 수업을 마친 뒤 그는 “학생들의 질문 내용으로 볼 때 평소 법이나 법원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한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며 “이미 법률수업에 참여하신 동료 판사들이 ‘아이들이 어렵고 까다로운 질문을 많이 하니 준비를 단단히 하고 가라’고 해 나름대로 수업준비를 했지만 부족함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교사가 되고 싶은 어린시절의 꿈을 비록 오늘 하루지만 이룬 것 같다. 좋은 추억이 될 것 같다”며 환하게 웃었다.
김수민 양(12)은 “법을 주제로 한 수업은 딱딱하고 법관은 무섭게 여겨졌는데 실제 판사님을 만나 보니 무척 다정다감하고 친절했다”며 “이제 법이 무엇인지 조금은 알 것 같다”고 말했다. 또 김성훈 군(12)은 “판사님과 같은 법관이 되려면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수업 내용을 부모님과 친구들에게 자랑하고 싶다”고 밝혔다. 이 학교 김복희 교감은 “민법과 형사법을 겨우 구분하는 정도의 지식을 갖춘 학생들이 생생한 법률교육을 받아 법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게 되고 준법의식도 높아질 것으로 기대된다”며 “아이들이 자신의 진로를 설정하는 데도 상당한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대구지법은 지역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법치주의와 사법제도 등에 대한 교육을 위해 6월 대구시교육청과 ‘대경법고을학교’ 협약을 하고 초등학교 학생 법정견학, 초등학교 교사 법원 연수 등을 실시하고 있다.
정용균 기자 cavatin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