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한 뒤 변변한 직업이 없던 이모 씨(30)는 지난해 1월 부산 모 PC방에서 국가정보원 마크와 관인을 내려받았다. 자신의 사진과 국정원 마크 등을 현금카드에 붙여 가짜 국정원 신분증을 만들었다. 수갑과 ‘해외정보국 특수수사과’라고 새겨진 옷도 마련했다. 수첩에는 ‘대테러전 간부회의’ ‘청와대 업무보고’ 등 일과도 적었다. 공무원을 선호하는 결혼적령기 여성을 속이기 위한 사전 작업이었다.
같은 달 학원강사 김모 씨(27·여)에게 접근해 “국정원 공금 담당인데 미리 쓴 돈을 메워야 한다”며 9차례에 걸쳐 1100만 원을 김 씨 명의로 대출받았다. 6월에는 채팅 사이트에서 만난 최모 씨(25·여)에게 “국정원 공금카드를 분실해 옷을 벗게 생겼다”고 속여 은행 대출로 1600여만 원을 챙겼다. 올 2월에는 미용실 직원 김모 씨(29)와 결혼 약속을 한 뒤 같은 수법으로 82차례에 걸쳐 1400여만 원을 가로챘다. 결혼 의사가 없던 그는 5월엔 ‘동유럽 발령, 북한 스커드미사일 담당’이라는 내용의 국정원 인사 발령 공문을 위조해 김 씨에게 보여주며 결혼을 연기했다. 이런 방법으로 4명에게 챙긴 돈이 5000여만 원. 하지만 피해 여성이 신고하면서 범행은 들통 났다. 부산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29일 이 씨를 사기 혐의로 구속했다.
부산=윤희각 기자 tot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