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먼 브라더스 파산 이후 1년이 지났다. 아파트 값이 추풍낙엽처럼 떨어지는가 싶더니 어느새 슬금슬금 제자리로 간다는 소문이 들린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지난 번 부동산 버블은 우리나라 뿐 아니라 전 세계적인 현상이었다. 그리고 부동산 버블은 로맨틱코미디에도 영향을 미쳤다.
2007년 개봉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그리 크게 화재가 된 것 같지는 않지만 미국에서는 흥행에 꽤나 성공했다는 로맨틱코미디 '브레이크 업(Break up)'에는 그 부동산 버블이 묻어나온다. 제니퍼 애니스톤이 분한 갤러리 큐레이터 브룩과 관광 가이드 게리는 공동으로 집을 사서 함께 살고 있는 오래된 커플.
처음 만날 때와 다른 게리의 무신경한 태도에 브룩은 서운함이 쌓이고, 급기야 사소한 언쟁이 큰 싸움으로 번진다. 그러나 아직은 헤어지고 싶지 않은 두 사람이 서로 자존심을 세우면서도 당장 짐싸서 떠날 수 없는 핑계가 되어주는 것이 바로 공동소유의 그 집과 대출이다. 헤어지기 싫은 마음을 서로 나는 못나가니 네가 나가라면서 버티는 것으로 표현하고,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여러 가지 에피소드들로 영화는 진행이 되지만...
나는 리만 브라더스 파산 전에 그 영화를 보면서 한국뿐 아니라 미국도 집값이 꽤나 오르긴 올랐나보다고 생각했다.
영화에서 둘은 서로에게 준 지나친 상처를 극복하지 못하고 결국 상당히 오른 값에 집을 처분하고 헤어진다. 분명히, 로맨틱 코미디에서 보기 드문 씁쓸하지만 현실적인 결말이었다. 익숙해진 상대에 대한 무신경과 배려없음, 서로의 괜한 자존심, 도움이 안 되는 친구들의 조언에다 운명이 두 사람을 갈라놓으려는지 절묘한 오해들까지 겹겹이 쌓여있는 상황에서도 어떤 한방에 해피앤딩이 가능한 것은 사실 영화에서나 가능한 일 아닌가.
그러나 그나마 영화가 우울하지 않은 '로맨틱 코미디'의 범주에 남아있을 수 있던 것은 집값을 사정없이 올려주던 버블 때문이었다.
부동산 버블이 꺼진 이후 미국에서는 정반대의 상황이 펼쳐졌다고 한다. 헤어지고 싶지 않아서 대출금 핑계를 대는 것이 아니라, 정말 대출금 때문에 헤어지지 못하게 된 거다. 집을 팔아도 대출을 갚고 변호사 비용을 내고 나면 수중에 남는 게 없다보니 이혼 소송을 미루거나 이혼 후에도 한 집에 사는 경우가 생겼다고 한다.
이 상황도 똑같은 로맨틱코미디를 위한 배경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홧김에 이혼을 하지만 집을 처분하지 못해서 어쩔 수 없이 한 집에 사는 동안 서로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고 등등…. 하지만 이번에는 정말 티격태격하다가 극적인 화해를 이루는 해피엔딩이 아니라면 용인되기 어려울 것 같다. 이 불황에 영화관에서까지 음울한 현실 기사를 보고 싶은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어쨌거나 버블의 정점에서 헤어진 '브레이크 업'의 커플은 쓰린 가슴에도 불구하고 지갑만은 두둑해졌던 것이다.
어쩌면 당시 모기지 빚을 얻어 집을 산 미국사람들이 본 것은 두 사람의 이별 과정뿐 아니라 이별에도 불구하고 두둑해진 지갑일런지도 모른다. 비록 헤어질 때 헤어지더라도 한때 영원을 꿈꾸며 공동으로 집을 산 커플의 결별이 쾌락만을 추구하던 사람들보다 경제적으로는 낫다는 것은 씁쓸하더라도 그럭저럭 삼킬 만한 것이었으니 '로맨틱' 코미디의 범주에 남아 흥행에도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리먼의 파산상황이라면 개봉도 불투명하지 않았을까?
버블이 만들어지고 꺼지는 경우는 역사에서 몇 번이나 반복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 쉽게 잊어버린다. 1년 만에, 너무 많은 것들이 너무 쉽게 잊히고 있는 것 아닐까. 조금이라도 더 오래 기억하기 위해 어쩌면 '브레이크 업 - 리로디드'가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박지하/경영 컨설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