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A+리포트]내비게이션 강자 팅크웨어 ‘아이나비’ 스토리

입력 | 2009-10-10 02:57:00


안티사이트에 쏟아진 불편사항 제품에 즉시 반영
불만고객이 홍보대사로

2000년 초, 서울 예술의 전당 앞마당에 성난 소비자 50여 명이 모였다. 인터넷 카페에서 제품에 대한 불만을 나누다 아예 ‘불매운동’을 벌이기로 작정한 사람들이었다. 대상은 ‘아이나비320’이란 개인휴대정보기(PDA)용 내비게이션 소프트웨어. 팅크웨어라는 작은 중소기업의 제품이었다.

팅크웨어 김진섭 사장은 이 소식에 부리나케 예술의 전당으로 갔다. 직원들은 “소비자들이 단단히 화가 났으니 진정된 다음에 개별적으로 찾아가자”고 말렸지만 김 사장은 듣지 않았다. 불매운동에 나선 소비자는 PDA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얼리어답터’들. 김 사장은 개념조차 생소하던 내비게이션 소프트웨어에 기꺼이 지갑을 열어준 이들을 무시할 수 없었다.

○ 소비자가 만든 제품

김 사장은 불만이 가득한 소비자들에게 머리를 조아렸다. 그렇다고 미안하다는 말만 한 건 아니었다. 그는 “우리 제품이 싫다, 부족하다 탓만 말고 어디가 부족한지, 어떻게 개선하면 좋을지 알려달라”고 부탁했다. 화를 달래겠다는 건지 따져보겠다는 건지 모를 사장의 말에 소비자들은 쉽게 분노를 삭이지 않았다. 그런 고객들에게 김 사장은 “뭘 고치라고 지적하면 반드시 고치거나 또는 고칠 수 없는 이유를 설명해 드리겠다”고 약속했다.

그래도 분을 삭이지 못한 소비자들은 ‘안티 사이트’를 만들었다. 이들은 아이나비의 불편한 사용법, 잘못된 지도 정보, 엉터리 길 안내 등을 세세하게 지적했다. 김 사장은 비판을 성실하게 받아들였다. 1년 동안 이 인터넷 동호회의 이야기를 최대한 반영해 제품을 만들었다. 기술적으로 해결하기 어렵거나, 오해에서 비롯된 지적이 있으면 기술 담당 임원이 직접 인터넷 게시판에 해명하도록 했다. 홈페이지 게시판에 올라오는 고객의 불만과 비난은 하나도 지우지 못하도록 했고, 속이 상하더라도 모든 비난 글을 직접 읽었다.

그렇게 1년이 지나자 소비자들은 달라진 아이나비를 발견했다. 자신들의 의견이 최대한 반영된 신제품이 나온 것이다. 소비자들은 ‘무료 업그레이드’를 통해 새로운 소프트웨어를 구입하지 않고도 새 제품을 쓸 수 있었다. 소비자들은 달라진 아이나비에 애착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들은 서서히 아이나비의 장점을 홍보하는 홍보대사들로 변해갔다.

2009년 9월 말 현재 아이나비 홈페이지에 가입한 회원 수는 약 250만 명. 2개월마다 진행하는 지도 정보 업데이트 땐 50만 명이 홈페이지에서 새 지도 정보를 내려받는다. 이들은 여전히 아이나비의 ‘안티’다. 자신의 동네 골목길이 빠졌다거나 새로 생긴 주유소 이름이 잘못 표기됐다는 등의 불만을 2, 3주 내로 올린다.

‘안티’ 시각에서 올리는 이 정보가 팅크웨어의 경쟁력이다. 이 정보로 지도를 개선하기 때문이다. 전국을 일일이 돌며 지리정보의 변화를 파악하려면 엄청난 예산이 들지만 50만 명이 잘못된 정보를 지적해 주면 그곳만 살펴보면 된다. 이 일을 담당하는 사람은 단 40여 명뿐인 실사팀. 가장 힘든 일을 소비자가 대신 해주는 셈이다. 김 사장은 “아이나비의 경쟁력은 경쟁사는 따라할 수 없는 거대한 소비자 커뮤니티에서 나온다”고 말했다.

○ 두 번째 위기

내비게이션은 대단한 기술을 필요로 하는 제품이 아니다. 사용자의 위치를 알려주는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과 잘 만들어진 지도, 그리고 도로 정보와 적절한 경로 탐색 기술만 있으면 만들 수 있다. 그래서 수많은 중소기업이 2001년 아이나비의 성공을 보면서 앞 다퉈 이 시장에 뛰어들었다. 당시 기업들이 택한 사업모델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소프트웨어를 만들어 내비게이션 단말기를 제작하는 회사에 판매하는 방식이었고, 다른 하나는 하드웨어도 만들어 소비자와 직접 상대하는 방식이었다.

팅크웨어는 초기부터 전자를 택했다. 소비자를 대상으로 제품을 직접 판매하려면 광고도 해야 하고, 유통망도 확보해야 하며, 가격 책정부터 애프터서비스(AS)까지 다양한 관리 노하우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2005년 들어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매출 증가와 더불어 거래하는 단말기 업체가 늘면서 팅크웨어는 소프트웨어를 100가지 이상의 단말기에 맞춰 일일이 수정을 해줘야 했다. 소프트웨어 연구개발은커녕 고객사인 단말기 제조업체 응대에만 급급했다. 자연히 제품의 품질이 떨어졌고, 소비자들은 다시 팅크웨어를 비난하기 시작했다.

위기를 직감한 김 사장은 회사의 전략 방향을 완전히 바꿨다. 직접 소비자 대상으로 단말기를 팔기로 결정한 것이다. 단말기 회사와의 거래를 하나씩 정리했고, 직접 단말기를 생산했다. 운도 따랐다. 당시는 국내에서 중견 휴대전화 업체들이 도산하던 시절이라 설계도만 가져다주면 싼값에 품질 좋은 완제품을 만들어 주는 제조 공장이 많았다. 팅크웨어는 이렇게 공장 하나 없이 제품 생산을 시작했다.

시장점유율 50% 넘어… 내비게이션 특허만 240건

아이나비 내비게이션은 처음에는 인터넷에서만 팔았다. 하지만 고객들의 ‘입소문’ 덕분에 양판점과 전자상가, 할인점 등에서 아이나비를 찾는 소비자들이 생기자 까다로울 것으로 예상했던 유통망 영업도 쉽게 풀렸다. 이때부터 매출이 수직 상승했다. 2006년 매출은 2005년보다 두 배 이상 성장해 1014억 원이 됐고, 2007년 1622억 원, 2008년 2143억 원으로 꾸준히 늘었다.

○ 접점 마케팅

2008년 기준으로 내비게이션 시장에서 아이나비의 시장 점유율은 50%가 넘는 것으로 팅크웨어는 추산하고 있다. 차량에 장착돼 나오는 제품을 제외하고 소비자가 별도로 구입하는 내비게이션을 기준으로 볼 때 지난해 판매된 내비게이션은 약 140만 대. 팅크웨어는 이 시장에서 약 78만 대의 아이나비를 판매했다. 중력 감지 센서를 이용해 차가 오르막을 달리는지 내리막을 달리는지 파악하는 기술 등 약 240건의 내비게이션 관련 특허도 보유했다.

시장 1위에 기술력도 뛰어나지만 이 회사는 좀처럼 안심하질 못한다. 고객들의 변심이 순식간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객과의 접점이라면 온갖 세심한 곳까지 꼼꼼하게 신경 쓴다.

팅크웨어의 AS 센터는 대기업 못지않은 서비스를 제공한다. 고장 난 제품을 맡기면 30분 또는 1시간 뒤 등으로 수리 완료 시간을 계산해 알려주고, 수리 완료 시간까지 고객이 기다리기 어려우면 다음 날 수리된 제품을 무료로 배송해 준다.

김 사장은 “회사 홈페이지의 게시판은 가장 신경을 쓰는 공간”이라고 힘줘 말했다.

“아무리 신랄한 비판이 쏟아져도 단 한 번도 게시판을 폐쇄한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게시판에서 다른 사용자에게 활발하게 정보를 알려주는 ‘파워 사용자’들과는 특별히 따로 인터뷰도 갖습니다.”

김상훈 기자 sanhkim@donga.com

실사팀 하루 400km 달리며 정보 수집 입력
두달마다 지도 업데이트… 작년 출장비 7억원

내비게이션의 핵심은 다양한 정보를 담고 있는 지도다. 수시로 생겨나는 새로운 길은 물론이고 주유소와 음식점, 골프장과 관광지 등 내비게이션에 포함되는 정보의 종류는 점점 다양해진다. 이 정보를 확인하고 내비게이션에 담는 사람들이 바로 내비게이션 업체의 지도 실사팀이다.

팅크웨어의 실사팀은 40여 명으로 전국 8개 애프터서비스 센터에 흩어져 근무한다. 이들이 하루 실사를 위해 달리는 평균 주행거리는 350∼400km. 오전 6시에 출발해 오후 8시까지 14시간을 길에서 보낸다. 쉽지 않은 일이라서 센터마다 2인 1조로 구성된 2, 3개 팀이 교대로 실사에 나선다. 한 명이 운전을 하고 다른 한 명이 디지털 카메라와 노트북 컴퓨터,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기록장비 등을 이용해 경로와 지리정보 등을 입력하는 방식이다. 이들은 정보 활용도를 높이기 위해 목적지 건물에 주차가 가능한지, 각 건물의 출입구 위치는 어디인지까지 확인해 지도 제작에 반영한다.

이렇게 측정한 결과는 2개월마다 실시하는 지도 업데이트에 반영된다. 회사 측은 이때 이들이 새로 추가하는 도로의 길이가 1000km가 넘는다고 설명했다. 이 회사가 지난해 쓴 직원들의 여비·교통비는 약 7억7000만 원에 이른다.

김상훈 기자 sanh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