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서 각각 두번째 개인전
과학도 예술도 결론은 ‘인간’
프리즘 굴절 작용 통한 빛의 오묘함 느껴보고
눈이 아닌 뇌가 인지하는 색과 형태에 빠지고
《일상 속에 첨단기술이 파고든 21세기를 사는 예술가들에게 과학적 언어는 낯설지 않다. 이들은 과학적 지식과 기계 장치를 예술의 원료로 녹여낸다. 한국에서 각기 두 번째 개인전을 열고 있는 네덜란드 출신 프러 일건 씨(53)와 덴마크 태생 올라푸르 엘리아손 씨(42)가 바로 그런 작가이다. 과학적 연구를 활용해 현대 예술의 지평을 넓히려는 이들의 작업은 관람객과 상호 작용을 중시하는 만큼 몸으로 ‘체험’하는 즐거움도 제공한다. 》
이들이 과학에 손 내미는 이유는 무엇일까? “철학과 예술과 과학은 서로 겹쳐지고 맞물려 있다.”(일건) “사람이 어떻게 세상을 받아들이는지 이해하기 위해 과학이란 도구를 사용한다.”(엘리아손) 예술이 과학에 기대는 것은 인간의 보편적 공감대를 찾아내려는 예술의 ‘오래된 꿈’, 인간 이해를 위한 또 다른 시도인 셈이다.
○ 가만히, 신비롭게
엘리아손 씨는 영국 런던 테이트모던미술관의 터빈홀에 초대형 인공태양을 설치하고 미국 뉴욕의 이스트 강을 따라 인공폭포를 만드는 등 특정한 공간에 자연 현상을 재현하면서 유명해졌다. ‘관람객 참여’와 ‘일시성’을 화두로 삼은 그의 작품을 서울에서도 체험할 기회가 생겼다. 11월 30일까지 서울 강남구 청담동 pkm트리니티 갤러리(02-515-9496)에서 열리는 개인전(‘Is the sky part of a landscpe’). 빛, 색채, 공간의 관계에 주목한 회화와 설치작품 10여 점을 선보이는 자리다.
과학자, 기술자와 협업을 통해 작품을 만드는 그는 “우리가 색을 어떻게 인지하는지 알기 위해 과학의 도움을 받고 있다”고 말한다. 예컨대 빛의 파장을 분석해 360가지 색을 칠한 ‘색 실험’ 시리즈 등이 대표적이다. 더불어 색채 실험장 같은 다양한 설치작품도 눈길을 끈다. 프리즘의 굴절과 물의 반사작용을 통해 관람객이 직접 빛과 색의 오로라를 만들고, 수십 개 형광등 빛과 인공안개로 가득 찬 공간을 걸으며 색채의 변화를 몸으로 느껴보고, 탁자 밑에 들어가 만화경 속에 비친 자기 얼굴을 바라보는 체험 등. 미술을 모르는 이에게도 신기하고 흥미롭다.
그는 과학적 원리를 활용한 ‘유사 자연(Artificial nature)’ 창조의 거장으로 꼽히지만 “작업에서 과학과 기술은 도구일 뿐 내 관심은 사람”이라고 강조한다. 자연을 소재로 택한 이유도 모든 이가 공감하는 보편적 언어를 만들고 싶어서라고 한다.
○ 고요하게, 역동적으로
아이가 크레파스로 낙서한 것을 입체로 옮겨놓은 듯 변화무쌍하고 자유분방하다. 스테인리스스틸 기둥과 판이 얼기설기 이어진 위에 산업용 페인트를 칠한 설치작품. 여기에 살짝 밀어도 아래서 위로 움직임이 퍼져가는 키네틱 아트, 손과 나무를 그린 회화까지 40점이 공간과 어우러져 풍성한 율동과 에너지를 내뿜는다.
일건 씨의 ‘고요하고도 자유로운 비상’전은 11월 8일까지 서울 종로구 소격동 학고재 갤러리(02-720-1524)에서 볼 수 있다. 서울 신문로 흥국생명 본사 로비에 있는 40m 길이 대형 설치작품 ‘당신의 긴 여정’을 만든 작가다.
작가는 칸딘스키의 기하학적 형태와 동양의 서체에서 영향을 받았으나 작품 바탕에 뇌과학이 깔려 있다.
“눈이 보는 것과 뇌가 인지하는 것이 다르다. 모빌을 보면 눈은 하나의 조형물로 인식하지만 뇌는 각 형태를 분리해 지각한다. 사람이 어떤 색과 형태에 이끌리는지에 대한 연구를 작품으로 표현했다.”
예를 들어 비디오 아트에서 화면이 빨리 바뀌면 관객은 금세 자리를 뜬다. 눈은 너무 빠르거나 느린 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뇌는 텅 빈 것과 극히 복잡한 형태에 동일한 반응을 보인다는 것.
궁극적으로 그는 “과학 원리를 초월하는 이우환의 작품처럼 이를 넘어서는 지점에 이르는 것”을 지향한다. 그래서인지 마무리가 덜된 듯한 느낌의 작품을 선호하는 작가. “완벽한 삶이란 없다. 인생의 거칠고 힘든 굴곡도 표현하고 싶다”고 말한다. 관람객이 작품 안에 들어가거나 움직여 보면서 자기 작품이 그렇듯, 인간이 지닌 불안정함과 모순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면 좋겠다는 게 그의 바람이다.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