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 이 모씨(64·서울 양천구 목동)는 3년 전부터 갑자기 시작된 어지럼증 때문에 고생이다. 앉았다 일어나거나, 걷다가 몸을 돌릴 때면 마치 스펀지 위를 걷는 것처럼 중심이 잡히지 않는다.
막연히 빈혈이라는 생각에 빈혈약과 한약도 먹어보고 병원에서 각종 검사와 치료를 받아보았지만 증상은 나아지지 않았다. 올 초부터 작은 움직임에도 중심이 잡히지 않을 정도로 증상이 악화돼 세란병원 어지럼증 클리닉을 찾았다.》
귀 속 균형감각 기능-뇌기능 이상 등 복합원인이 대부분
반드시 전문클리닉 검진-개인별 맞춤치료법 따라야 호전
○ 복합적 요인으로 발병
정밀진단 결과 이 씨는 귀 속에 균형감각을 담당하는 전정기능, 눈의 시각자극반응, 몸의 신체위치감각도 함께 떨어져 있었다. 또 본인이 못 느끼는 ‘무증상 뇌경색’으로 인해 전체적인 뇌기능이 저하돼 있었다. 이 씨는 복합적인 원인으로 3년 이상 지속적인 어지럼증을 겪어 온 만성 어지럼증 환자로 진단받았다. 보통 1개월 이상 지속적인 어지럼증을 겪으면 만성 어지럼증으로 본다.
세란병원 뇌신경센터&어지럼증 클리닉 박지현 과장은 “만성 어지럼증은 여러 원인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사례가 많다”며 “세심한 진찰과 정밀 검사로 원인을 찾고 균형감각 재활치료를 해야 호전될 수 있다”고 말했다.
○ 빈혈로 오해하기 쉬워
어지럽다는 것은 분명 우리 몸의 이상신호이다. 그러나 대부분 빈혈로 여겨 빈혈 치료에만 집중하거나 이 씨처럼 정확한 원인을 찾지 못해 혼란스러워한다. 어지럼증은 뇌기능 이상에서부터 귀 속 문제, 과로, 스트레스까지 다양한 원인이 있어 뚜렷한 원인을 밝혀내기 힘들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갑자기 생기는 어지럼증은 한 가지 원인에 의해 발생하고 비교적 원인 진단이 명확하다. 반면 만성어지럼증은 한 가지 이상의 복합적인 원인으로 오랜 시간에 걸쳐 서서히 혹은 반복적으로 발생하고 만성화되기 때문에 점차 치료가 어려워지는 경향이 있다.
만성 어지럼증의 원인은 크게 △균형감각을 통합하는 뇌의 문제로 인한 경우를 포함하는 뇌신경계 이상 △신경에 문제가 있는 척추말초신경계의 이상 △귀 속 전정신경계의 기능 저하가 대표적이고, 이런 원인들이 상호 작용해 발생한다.
박 과장은 “만성 어지럼증은 정확한 원인을 찾지 못하는 사례가 흔하다”며 “만성 어지럼증 치료는 어떤 원인이 어느 정도 기여하는지를 정확하게 진단하는 것이 우선이다”고 말했다.
○ 균형감각 재활 프로그램 시행
만성 어지럼증의 약물치료는 중추신경기능을 억제해 일시적으로 어지럼증을 덜 느끼도록 하는 방법으로 확실한 치료법은 될 수 없다. 골절상을 입은 환자가 진통제만으로 통증을 치료하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만성 어지럼증 환자 개인의 상황과 질환의 정도에 따라 복합적인 치료를 할 수 있는 맞춤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이 씨의 경우 중추신경계의 문제를 확인하기 위한 뇌 자기공명영상(MRI)촬영, 균형감각과 운동기능을 평가하기 위한 동적자세 검사를 시행한 결과 3군데의 경미한 무증상 뇌경색과 균형감각을 제어하는 모든 감각영역에 이상이 관찰됐다. 무증상 뇌경색은 고혈압 환자가 제대로 치료하지 않을 경우 종종 발견된다.
이 씨는 오랫동안 복용해 오던 어지럼증 억제제를 중단하고 뇌경색에 관련된 치료와 균형감각 재활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균형감각 재활 프로그램은 지속적인 어지럼증과 균형감각 장애를 호소하는 환자에게 균형장애의 원인이 되는 감각신경과 운동신경을 훈련하고 뇌를 자극해 균형감각을 회복시키는 치료법이다.
환자 개인마다 문제가 되는 부분에 맞는 프로그램을 짜는 것이 중요하며 무엇보다 꾸준히 해야 된다. 일반적으로 6∼10주 시행한다.
2개월 동안 치료를 받은 이 씨는 “장소나 도구에 구애받지 않고 어디서나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운동요법이라 거부감이 없었다”면서 “어지럼증이 많이 좋아져 최근에는 집에서 혼자 하고 있다”고 말한다.
박 과장은 “만성 어지럼증은 여러 가지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질환이므로 증상의 강약을 떠나 지속적인 어지럼증으로 고통받고 있다면 반드시 어지럼증 전문의를 통해 원인을 찾아 적극적인 치료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진한 기자·의사 liked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