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정부 이슬람委 설치… 무슬림 끌어안기 적극 나서
“신앙-문화 충돌 피해야” 현지 이슬람단체 호응… 예배시간 바꾸고 코란 재해석
《지난달 4일 오후 1시(현지 시간), 프랑스 파리 외곽의 프랑스 이슬람단체연합(UOIF) 건물에 무슬림(이슬람교도)들이 모여들었다. 매주 금요일 정기 예배를 위해서다. 1시 반 정도가 되자 협소한 강당이 1500여 명의 무슬림으로 가득 찼다. 질서정연하고 절도 있는 몸짓…. 30여 분간의 예배는 숙연했다.
같은 시간, UOIF 이외 파리 시내 300여 곳, 전국적으로 2000여 곳의 모스크에서도 같은 예배가 이루어졌다. 프랑스 내 355만여 명의 무슬림은 금요 예배를 통해 그렇게 하나가 됐다.
유럽의 무슬림은 이미 큰 세력이다. 미국 싱크탱크인 퓨포럼(Pew Forum)에 따르면 유럽 내 무슬림 인구는 3811만 명에 이른다. 유럽 인구의 5%다. 프랑스에는 20세기 초 식민지였던 알제리 출신의 무슬림 이민자가 특히 많다. 프랑스 전체 인구의 약 6%에 해당하는 355만여 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독일은 403만 명, 영국은 165만 명 선이다.》
○ 이민자들 유럽 문화 동화에 어려움
문화적으로 다른 무슬림의 존재가 주류 유럽인들에게 편하지만은 않다. 이질적인 면이 많아 하나로 섞이기도 쉽지 않다. 파이낸셜타임스 칼럼니스트인 크리스토퍼 콜드웰은 “수많은 이민자가 유럽 문화에 동화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들이 무슬림이기 때문”이라고까지 말했다. 자신의 저서 ‘유럽의 혁명 회고, 이민과 이슬람 및 서방세계’를 통해서다.
프랑스에선 무슬림과의 종교적 갈등이 독일, 영국보다 거센 편. 프랑스 공화국 정신의 바탕이 ‘단일하고 분리될 수 없는, 비종교적 공화국’이기 때문이다. 공화국 통합모델에서 ‘서로 다름을 인정하라’는 것은 받아들이기 힘든 요구다.
○ ‘유럽식 이슬람으로 재탄생’ 몸부림
프랑스의 무슬림은 “프랑스에 걸맞은 새로운 이슬람으로 재탄생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다. 포우아드 알라위 UOIF 부위원장은 “프랑스 내 이슬람 모델을 만드는 것이 가장 시급한 과제”라며 “무슬림들이 프랑스에 살면서 종교적 실천으로 인해 갈등을 겪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코란 율법 재해석 작업이 기본이다. UOIF는 이슬람에서 일부다처제가 합법이나 프랑스에선 불법이므로 프랑스 무슬림도 일부다처제 금지 원칙에 동의해야 한다고 해석했다. 또 봄 가을 겨울엔 오후 1시, 여름엔 오후 2시에 하는 금요 예배를 일괄 오후 1시에 해도 괜찮다고 해석했다. 금요일 오후 2시는 일반적인 프랑스 국민이라면 직장에서 일을 해야 하는 시간이기 때문.
이뿐만 아니라 극단적 이슬람주의자들과 프랑스 이슬람을 동일시한다거나 젊은 무슬림이 그들과 접촉하는 일도 경계하고 있다. 알라위 부위원장은 “2004년 이라크서 프랑스인 인질 2명을 잡아놓고 ‘프랑스 내 히잡(이슬람 여성의 머리 가리개)금지법안을 철폐하라’고 요구했는데, 우리는 그곳에 가서 ‘프랑스 내 이슬람을 연관시키지 말아 달라’고 했다”며 “아프가니스탄 등지의 무슬림과 프랑스의 무슬림은 다르다”고 거듭 강조했다.
○ 프랑스, ‘새로운 동화주의’ 찾아야
프랑스 주류사회는 어떨까. 공화국 정신에 따라 출신, 인종, 종교를 구분하는 것은 원칙에 어긋난다. 따라서 공공장소에서 특정 종교를 따로 지원할 수도 없다. 하지만 원칙과 현실의 괴리는 있는 법. 박단 한성대 역사문화학부 교수는 “2004년 안식년 당시 아이를 공립학교에 입학시켰는데, 연초에 ‘아이가 돼지고기를 먹느냐’는 내용의 설문조사 안내장을 받았다”며 “미리 설문조사를 해 유대계나 무슬림 학생이 돼지고기를 먹지 않을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기존 동화정책으로 풀지 못하는 모순을 현실적으로 타협한 셈이다.
최근 이민문제 전문가들은 니콜라 사르코지 정부의 행보에 주목하고 있다. 사르코지 대통령은 2004년 내무장관 당시 쥐라 도(道) 도지사에 알제리 출신 교수를 임명해 주위를 놀라게 했다. 2002년에는 ‘프랑스 이슬람위원회’를 창설해 무슬림과의 대화 창구로 삼고자 했다. 2009년 들어서는 출신 및 인종 구성비와 종교적 성향 파악을 위한 인구센서스를 시도했다. ‘평등한 공화국’ 건설을 위해 의도적으로 인종, 종교 파악을 하지 않던 프랑스가 또 다른 의미로 ‘평등한 공화국’ 건설을 위해 출신, 인종, 종교를 구분하려는 것이다.
박 교수는 “프랑스도 355만여 명이 넘는 이민자 앞에서 오랜 기간 금과옥조로 여겨왔던 기존 공화국 원칙을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며 “수백 년 이민 역사 끝에 새로운 동화주의를 찾는 프랑스의 행보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파리=김현지 기자 nuk@donga.com
▼직장 포기하고… 눈총 받고 국내 외국인 종교 갈등▼
다문화가정 종교활동 정부차원 지원은 미흡
5년 전 한국에 온 우즈베키스탄 출신 결혼이민여성 샤리포바 질라보 씨(29)는 독실한 무슬림이다. 그는 하루에 두 번씩 기도를 올리는 일을 거르지 않는다. 고향에서 대학을 나오고 한국어도 유창한 그는 얼마 전 작은 회사에 취업했지만 곧 그만두었다. 회사에서 무슬림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사람들의 시선이 이상하다는 걸 느꼈기 때문이다.
필리핀 출신인 에덴 씨(38)는 천주교 신자다. 경기 시흥시에 사는 그는 일요일마다 서울 혜화동 성당에서 열리는 미사에 참석한다. 집 근처 성당에 나가고 싶지만 주위 사람들의 눈을 의식해 외국인이 많이 모이는 혜화동 성당까지 지하철을 타고 가는 것이다.
결혼이주여성 등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은 종교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일이 많다. 이교도에 대한 한국 사람들의 시선이 불편할 뿐만 아니라 종교 활동에도 제한을 받는 경우도 있다. 또 종교적인 이유로 보이지 않는 차별과 불평등을 겪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주한 외국인의 종교 분포 등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문화체육관광부 종교국 강재수 사무관은 “주한 외국인들의 사생활 보호 차원에서 어떤 종교를 가지고 있는지 등을 조사하지는 않았다”며 “현재 정부에서 주한 외국인들의 종교 활동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은 없다”고 말했다.
이주노동자들이 많은 경기 안산시도 외국인 종교 정책을 마련하지 못했다. 안산시 문화관광과 권명화 씨는 “종교는 민감한 문제라 관청에서 어떤 정책을 제시하면 부작용이 생긴다”며 “일부 종교단체에서 무슬림이 위험하다는 편견을 나타내기도 했다”고 말했다.
외국인과 종교적으로 소통하고 지원하는 프로그램은 정부나 지장자치단체보다 각 교단에서 더 활발하다. 천주교 서울대교구는 서울 성북구의 다문화가정지원센터를 열어 결혼이민여성 등의 한국 문화 적응과 종교 활동을 돕고 있다. 다문화가정센터는 베트남 출신 수녀를 통해 베트남 출신 외국인의 종교 활동을 지원한다.
서울다문화가정지원센터 곽정남 수녀는 “서울대교구에서는 ‘필리핀 공동체’를 만들어 필리핀인들에게 미사를 드릴 수 있도록 혜화동 성당을 제공하고 물물교환 장터도 열고 있다”고 말했다. 천주교에서는 지방교구별로도 지원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대한불교 조계종은 안산시에 마하보디이주민센터를 설치하고 외국인들을 위한 법회 등 포교활동과 정착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조계종 총무원 국제팀에서도 경기 부천시의 석왕사 등 다문화사업을 활발하게 벌이는 사찰을 지원한다.
민병선 기자 bluedo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