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계 일본인 이와모토 씨
2002년 처음 공연보고 빠져
“무슨일이든 시켜달라” 떼 써
극장가게 일하며 오디션 준비
일본 국적의 배우가 넌버벌 퍼포먼스 ‘난타’에 데뷔했다. 13일 오후 서울 명동 난타전용극장 개관 기념 공연에서 홍일점 ‘핫소스’ 역으로 출연한 이와모토 유카 씨(25). 남자 배우 4명과 함께 ‘신나게 두드리고’ 내려온 그는 “엔딩 장면에서 북을 치면서 살아 있음을 느꼈어요. 북소리는 심장소리와 비슷하죠”라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재일교포 2세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한국 이름은 이유향. 2002년 큰아버지 가족을 만나기 위해 처음 한국을 찾았고, 평소 일본 TV에서 눈여겨봐둔 ‘난타’ 공연을 보았다. 그날 이후 마음속에 늘 ‘난타’라는 꿈을 품었다.
“한 일본인 할아버지가 박장대소하고 눈물까지 흘리면서 ‘난타’ 공연을 즐기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어요. 한국과 일본은 역사적으로 앙금이 있잖아요. 그러나 그 할아버지를 보면서 ‘역사의 장벽도 넘을 수 있는 공연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죠. 그분뿐 아니라 모든 관객이 한껏 공연을 즐기고 있었어요.”
일본의 대학에서 사회학을 공부하면서 시간을 쪼개 뮤지컬 교실에서 연습하고 한국어 공부도 했다. 거기서 멈출 수 없었다. 2007년 봄엔 한국으로 건너와 서강대 어학당에서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한국어에 제법 익숙해진 그해 가을, ‘난타’에 조금 더 가까이 가기 위해 무작정 극장을 찾아갔다. “무슨 일이든 시켜주세요”라고 말했다.
“무대 스태프를 하고 싶었는데 자리가 없어서 캐릭터 가게에서 일했어요. 그때는 ‘사람 필요 없다’고 하면 무보수로 일하겠다고 할 생각이었어요. 오디션에 대비해 현대무용, 타악기 레슨도 받았죠. 그래도 힘들지 않았어요. ‘난타’가 좋았으니까요.”
결국 올해 3월 공개 오디션에 합격했다. 그는 “집에 혼자 있는데 합격 문자 메시지가 왔어요. ‘어떡해, 어떡해…’ 하면서 혼잣말하고 소리 지르고 아주 난리였어요”라며 웃었다.
데뷔 무대에는 그의 부모가 깜짝 초대됐다. 제작사 PMC에서 그에게는 비밀로 하고 모셔온 것. 남다른 길을 가려는 고명딸 때문에 걱정이 많았던 부모였다.
“처음엔 ‘다른 사람들처럼 대학 졸업하고 직장 다니고 결혼하고 애 낳고 그렇게 살라’고 하셨죠. 하지만 전 한번 마음먹으면 끝까지 포기 못해요. 부모님도 그걸 아시기에 결국 ‘뜻대로 해보라’고 응원해 주셨어요. 오늘 ‘참 잘했다’고 하셔서 눈물이 났어요.”
이날 오후 8시 공연을 준비해야 한다면서 “내가 ‘난타’를 보고 그랬듯 어른에게는 힘을, 젊은이에게는 꿈을 주는 배우가 되고 싶다”고 말하는 모습이 다부져 보였다.
‘난타’는 1997년 10월 초연 이후 지금까지 1만4000회 공연돼 480만여 명의 관객이 찾았다.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