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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타이, 다이?

입력 | 2009-10-15 02:58:00


‘패션의 마침표’는 옛말… 노타이 열풍에 ‘천덕꾸러기’ 신세로

‘남성 정장의 완성인 넥타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가.’

20세기 한국 현대사에서 넥타이는 단순한 패션 코드 이상이었다. 배움에 대한 갈망이 크던 시절, 지식인이나 사무직 근로자만 착용했던 ‘신분의 상징’이었고 1980년대 중산층을 의미했던 ‘넥타이부대’는 민주화운동에 새로운 역사를 썼다.

그런 넥타이의 도도함이 예전 같지 않다. 최근 패션·유통업계에서는 넥타이의 ‘몰락’을 예견하는 목소리가 계속 나오고 있다.

○ 넥타이가 최근 세 번 운 사연

요즘 넥타이의 위상은 말이 아니다. ‘나는 선물상품이니까, 명절, 스승의 날에만 팔려도 충분하다’는 자신감은 미국 넥타이 제조업체들의 모임인 ‘남성용 의류액세서리협회’가 문을 닫았다는 외신이 들려온 지난해부터 위기감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쿨 비즈 룩’, ‘편하니까’ 등을 이유로 미국 남성들이 넥타이를 외면하면서 이 협회는 1980년대 120개에 달했던 회원사가 지난해 25개로 줄어들었다. 지난해 미 갤럽조사 결과 일할 때 항상 넥타이를 착용한다는 남성은 사상 최저인 6%에 불과했다. 심지어 넥타이회사 최고경영자(CEO)가 자주 노타이 차림으로 회의에 참석한다는 보도는 넥타이의 자존심에 치명타를 입혔다.

한국도 상황은 비슷하다. 작년부터 지구온난화와 에너지 절약운동으로 ‘쿨 비즈 룩’이 유행하면서 대기업들의 노타이 선언이 확산됐다. 주요 백화점들이 앞 다퉈 넥타이 없는 ‘쿨 비즈 룩’을 홍보하기 시작했고 삼성그룹의 ‘자율복장’ 선언은 더 충격적이었다.

공무원들마저 이 같은 흐름에 가세했다. 행정안전부는 지난달 “연중 내내 자유롭고 편안한 (노타이) 복장으로 근무할 수 있다”는 내용의 ‘공무원 복장 관련 지침’을 각급 기관에 통보했다. 여름철이 끝나도 정장 차림에 넥타이를 맬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또 신종 인플루엔자A(H1N1)가 유행하면서 자주 세탁하지 않는 넥타이가 세균 감염의 매개체란 인식이 확산되고 의사들이 착용하는 가운, 넥타이가 오염 경로라는 얘기까지 나와 넥타이 씨를 펑펑 울리기에 이르렀다.

○ “클래식 정장이 있는 한 사라지지 않을 것” 낙관도

한 넥타이업체 관계자는 “최근 몇 년 사이 매출이 줄어드는 속도는 ‘악’ 소리가 날 정도”라고 말했다. 신세계백화점에 입점한 유명 넥타이 브랜드 A사의 경우 2005년에는 매출이 전년 대비 37.9% 신장했지만 2007년에는 20.3%, 2008년 12.3% 등으로 그 폭이 줄어들더니 올해는 9월까지 전년 동기 대비 6.1% 감소했다. 영국풍 신사복과 넥타이를 판매하고 있는 B브랜드 역시 2004, 2005년에는 매출이 두 자릿수씩 신장했지만 2006년부터 한 자릿수로 뚝 떨어졌고 올해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17.6% 줄었다.

백화점 전체 넥타이 매출도 예외는 아니다. 현대백화점은 1∼9월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9.4%, 신세계는 7.2%, 롯데는 2.4% 줄었다.

백화점 관계자들은 넥타이 판매가 줄어드는 데 대해 “시대적 흐름”이라고 진단했다. 반드시 넥타이를 매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백화점 및 대형 의류 매장들은 넥타이 전용 판매 공간을 두기보다 양말, 스카프, 손수건 등을 함께 모아 ‘넥타이와 친구들’ 같은 개념의 진열 전략을 활용하고 있다. 현대백화점 관계자는 “여전히 시장성이 있는 해외 명품 고급 넥타이와 액세서리 개념의 ‘젊은 (슬림) 넥타이’를 강화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넥타이의 미래에 대한 낙관론도 없지는 않다. 법조인, 금융인 등 넥타이 착용을 의무화하는 직업군이 여전히 건재한 데다 20, 30대 젊은층을 중심으로 젊은 감각의 슬림 타이, 보타이(리본 모양으로 짧게 매는 타이) 등 다양한 디자인의 넥타이가 호응을 얻고 있기 때문이다.

패션전문가인 황의건 ‘오피스h’ 대표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직장 내 유니폼 성격의 ‘워크 어타이어(work attire)’와 남성 정장 패션은 다르다”면서 “유니폼 성격의 넥타이 수요가 줄었다고는 하지만 “‘클래식’이라는 패션 코드와 슈트(양복)가 존재하는 한 넥타이 자체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정안 기자 j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