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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2칼럼/박지하]산업역군 아이돌의 시대

입력 | 2009-10-15 14:20:00


카라는 밑바닥에서 출발해 최고의 아이돌 그룹이 된 희귀 사례다.

요즘 가요계는 아이돌 천하다. TV 쇼프로그램의 대미를 장식하는 스타들은 대부분 아이돌 그룹이거나 과거 아이돌 그룹에 속해있었거나다.
다들 외모도 빼어나고 춤추고 노래하는 실력이 보통이 아니다. 격렬하게 춤추면서 노래하려다보니 립싱크도 많고 단체로 있다보니 누군가는 정말 노래를 좀 하고 누군가는 적당히 묻어가고 있겠지만 어쨌거나 화면 없이 노래만 듣기에도 제법 흥겨운 연출이 되고 있다.
가창력 뿐 아니라 얼굴도 예쁘고 잘생긴 사람들이 한번에 등장해 춤추고 노래 부르는 모습은 평범한 사람들이라도 기분 좋게 만든다. 예쁘고 노래 잘 부르는 이들이 인기를 얻는 예능의 공식은 예나 지금이나 별반 차이가 없는 듯싶다.
정말 달라졌다고 느껴지는 점은 그들의 존재 양식이다. 아이돌이 출연하는 예능 프로그램이나 인터뷰를 볼 때, 그들의 입에선 '사장님'과 '회사'가 자연스럽게 튀어나오기 마련이다. 그리곤 언제나 회사 직원들 간의 화목한 관계를 부각시키기 마련이다. 그들의 태도에서 한눈에 이들이 데뷔를 간절히 기다리며 '연습생' 시절을 거치고 식구들과 집에서 사는 것이 아니라 회사가 마련해준 '숙소' 에서 생활을 하는 '어린 직업인'의 모습을 간파 할 수 있다.
동방신기 2명의 의미심장한 문신

● 자연스레 "사장님, 사장님 우리사장님"
지금의 유명한 '사장님'들의 현역시절, 즉 이수만 박진영 양현석 등이 현역에서 활동하던 때에는 그렇지 않았다. 그들이 데뷔할 때는 그렇게 어리지도 않았다. 물론 가수 뒤에 매니저가 있다는 것은 다들 알고 있었지만 그들은 지원하는 사람의 이미지였지 지금처럼 '만드는' 사람들로 비춰지지는 않았다.
대중가요계는 남들을 위해 춤추고 노래하는 직업이 '딴따라'라고 불리우며 괄시를 받던 시절을 지나오면서 일종의 '대중예술'이 되고 싶어했던 것 같다. 지금처럼 연예인이 선호되는 '직업'은 아니었지만, 뭔가 기존의 예술 분야의 공통점을 가지고 싶어했다. 싱어송라이터들이 가지는 뭔가 우월한 이미지는 여전히 거기에 뿌리를 두고 있을 것이다. '예술의 전당'의 무대에 서고 싶어하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에서다.
그래서 TV에 나와서도 '사장님' '회사' '행사' 같은 이야기는 가능한 안 하려고 노력했다. 돈 이야기가 전면에 나오는 순간 이미지가 깨지니까. 비록 예술가 이미지를 따라가려고 굳이 애쓰지 않는 댄스그룹이라도 마찬가지였다. 예술적 이미지를 차용할 필요는 없었지만 최소한 그에 반하지는 않는 것이 일종의 컨센서스였달까.
그런데 지금은 좀 각도가 달라졌다. '아이돌'이라는 기획사가 처음부터 키워낸 집단이 인기몰이를 하면서부터 '산업적 근면함'이 각광받는다. 아이돌이 되기 위해 얼마나 치열한 경쟁을 뚫고 오디션을 통과했는가, 연습생간의 끊임없는 경쟁구도를 어떻게 이겨냈는가, 하루에 몇 시간씩 춤 연습을 했는가가 테마가 된다.

카라는 밑바닥에서 출발해 최고의 아이돌 그룹이 된 희귀 사례다.

예술가적 기질보다 부각된 '산업적 근면함'
멤버들은 각자 일종의 '업무분장'이 되어있고, 때로는 다른 팀으로 '파견'되기도 한다. 나는 처음엔 멤버 중의 일부만 따로 활동을 한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서태지는 혼자서 방송에 출연하거나 다른 가수와 음반을 내지 않았다. 누가 더 인기가 있고 없는가가 분명할지라도 어쨌거나 팀이니까.
그러나 이제 '양현석 사장님' 회사의 아이돌들은 개별적으로 방송에 출연하고 음반을 낸다. 같은 부서에 소속되어 있어도 누군가는 더 성과가 좋고 누군가는 성과가 덜하고, 누군가는 다른 부서와 TF를 구성해서 일하듯이.
이제 우리를 매혹하는 수많은 스타들은 제도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영혼으로서의 예술가보다는 문화산업계의 역군들이다. 과거에는 에이즈로 죽은 퀸의 프레디 머큐리도, 마약으로 죽은 리버피닉스도, 조니 뎁의 기행도 뭔가 19세기 프랑스 예술가들의 분위기와 연장선상에서 오히려 그 '불량함'으로 대중을 매혹할 수 있었다면 이제는 달라졌다.
예술가에게서 뿜어 나올 것 같은 퇴폐적이거나 반항적인 이미지는 화보로 충분하다. 어린 스타들은, 그 도전적인 눈빛과 섹시한 옷차림에도 불구하고, 데카당스적이고 반항적인 이미지의 아이콘이 아니라 빡빡한 스케쥴에 ¤기며 생활하고 관리해주는 스텝들이 여러 명씩 따라붙는 바쁜 직업인으로 존재한다.
이제 스타들은 우리와 동떨어진 천재예술가를 지향하기보다 건실한 산업역군을 지향한다. 19세기에 시를 쓰기 위해서는 천재적 시인과 종이와 펜으로 충분했다면, 이제 인터넷으로 뮤직비디오 한 편을 보기위해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엄청난 기반구조가 필요한 것이다.

카라는 밑바닥에서 출발해 최고의 아이돌 그룹이 된 희귀 사례다.

예술가가 아닌 부지런한 산업역군
작곡과 가창뿐 아니라 누군가는 안무를 짜고 연습시키고 장소를 헌팅하고 의상을 코디 하고 촬영하고 편집하고 특수효과를 넣고…. 그리고 또 누군가는 뮤직비디오를 서버에 올리고 홍보용 팝업창을 디자인해야 한다.
아이돌은 특히 더하다. 스스로 어느 정도 갖춘 '완성태'가 아니라 어린나이에 '가능태'로서 회사에 들어가 외국어를 배우고 춤을 배우며 데뷔를 할 그날을 준비한다. 결국 '신데렐라' 라거나 '혜성처럼 나타난' 아이돌은 없는 것이다.
처음으로 1위를 차지한 아이돌 그룹이 눈물을 글썽이며 여러 '실장님'들에게 감사를 표현하는 것이 '팬 여러분 사랑해요'를 외치는 것보다 그 진정성에서 조금이라도 부족한 점이 있겠는가. 어느 산업훈장을 받는 CEO가 임직원 여러분들과 이 영광을 함께 하고 싶다고 하는 것보다 그 진정성이 의심받아야 할 이유가 있겠는가.
19세기말이 데카당스의 시대로 기록된다면, 먼 훗날 우리의 문화사에 21세기 초는 산업역군 스타의 시대로 기록될지도 모르겠다.
박지하 / 경영컨설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