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수학능력시험 성적 원(原)자료가 공개돼 ‘고교(高校) 평준화’라는 제도 아래 숨겨졌던 학교 간 지역 간 학력격차가 낱낱이 드러났다. 평준화 고교의 학생들 성적이 같은 지역 내에서도 학교에 따라 심각한 차이를 보였다. 추첨으로 그 학교에 배정된 학생과 학부모들의 불만이 클 수밖에 없다. 35년 전 평준화 도입 당시 사교육을 줄이고, 어느 지역에서 학교에 다니든 똑같은 여건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교육기회의 형평성을 보장한다던 명분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이번 자료를 통해 학교선택권이 있는 지역의 학생들 성적이 높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평준화 지역인 광주의 경우 2002년부터 선지원 후추첨 제도를 도입하면서 각 학교가 우수학생 유치 경쟁을 벌인 결과 전국 16개 시도 중 가장 높은 성적을 올렸다. 이처럼 ‘가짜 평준화’의 폐해를 줄일 개선책 마련이 시급한 마당에, 전교조가 조전혁 한나라당 의원을 자료 유출 혐의로 검찰에 고발한 것은 환부를 덮어둔 채 학력격차를 방치하자는 얘기나 다름없다.
교육환경이 좋지 않은 지역의 학력을 높일 대책을 세워야 한다. 시도별 특목고를 제외한 학생들의 수능 평균 표준점수에서 서울이 11위, 경기도가 12위, 인천은 15위인데 그중에서도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낮은 것으로 추정되는 지역일수록 성적이 낮았다. 서울대 김기석 교수(교육학)는 “학력격차 문제는 사회경제적 배경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며 뒤처지는 학교의 뒤처지는 학생에 대한 정부 지원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교육과학기술부는 어제 학력격차 해결책을 마련하기 위해 태스크포스를 구성한다고 밝혔다. 이미 공개된 수능 자료는 물론 전국 학업성취도 평가를 근거로 우수교사를 우선 배치하고, 인적 물적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뒤처진 학교의 교장에게 학력신장의 책임을 맡기고 전권을 주는 것이 필요하다. 성적공개 및 학력강화 교육에 반대하는 전교조 교사들을 제대로 지도감독하지 못하는 교장에게는 책임을 물어야 한다.
정두언 한나라당 의원은 외국어고가 사교육을 유발한다며 자율형사립고로 전환하자고 주장했다. 외국어고의 외국어 인재 양성 기능을 살리면서 현재의 복잡한 고교 형태를 재조정하는 문제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국가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수월성(秀越性) 교육을 포기해선 안 된다. 실력 있는 학생들이 평준화 교실에서 졸고 있는 교육제도는 국가 장래를 어둡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