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축성장-신도시 탄생 지원한 ‘건설한국 효자’<br><br>‘대한민국 재건 주역’ 자부심<br>외환위기 후 해외시장 개척<br>업계 첫 온실가스 감축 인증<br>
○ 대한민국 재건과 함께하다
1950년대 중반 전쟁으로 폐허가 된 한국에선 재건사업이 한창이었다. 하지만 시멘트공장이라곤 일제강점기 일본이 한국을 병참기지로 활용하기 위해 세운 강원도의 삼척시멘트 하나뿐이었다. 그나마도 제대로 가동되지 않아 국내 건설업체들은 비싼 운반비를 들여 해외에서 시멘트를 들여올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민간 자본으로 공장을 일으키는 것은 쉽지 않았다. 이 회장과 동업자들은 6개월도 안 돼 1억 환의 적자를 떠안게 됐다. 얼마 뒤 동업자들은 떠나고 이 회장만 남았다. 이 회장은 삼척시멘트 공장 뒷산에 앉아 동해를 내려다보면서 시멘트공장을 홀로 인수하기로 마음먹었다.
○ 두 번의 위기, 두 번의 도약
힘든 결정이었지만 이 회장의 선택은 도약으로 이어졌다. 한국경제가 근대화하면서 시멘트 시장이 급성장한 것. 하지만 1970년대 들어 경쟁업체들이 속속 등장하자 시멘트 시장은 공급 과잉이 됐다. 거기다 유동성 문제까지 겹치면서 동양시멘트는 첫 위기를 맞았다. 이 회장은 수십 년간 쌓아온 신뢰를 바탕으로 채권자들로부터 채권 연장 합의를 이끌어냈다. 당시 박정희 정부의 8·3 사채동결조치 역시 유동성 위기를 벗어나는 데 도움이 됐다.
1980년대 경제성장과 신도시 건설로 시멘트 수요가 크게 늘면서 동양시멘트는 다시 순항을 하게 됐다. 1985년 상호를 동양세멘트공업에서 동양시멘트로 바꾸면서 사업 포트폴리오를 시멘트 제조업에서 제조·유통·서비스로 넓혔다. 부가가치가 높은 레미콘 사업에도 진출했고 1988년에는 건설 선진국인 일본에 법인을 세웠다.
○ 녹색 경영에 앞장서는 시멘트업계 맏형
시멘트 업계 맏형답게 동양시멘트는 녹색경영에도 앞장서고 있다. 동양시멘트는 회수한 폐열로 전력을 생산해 국내 시멘트 업계 최초로 온실가스 배출 감축사업장으로 인증을 받기도 했다. 자체 전력생산으로 동양시멘트가 절감하는 에너지 비용은 50억 원. 폐열발전소를 통해 얻는 전력은 전체 전력 필요량의 13.5%에 이른다.
그뿐만 아니라 산업부산물과 각종 생활폐기물 등을 시멘트 제조 원료로 사용해 바다로 내버려지는 폐기물량을 줄이고 있다. 동양시멘트가 연간 자원으로 만드는 폐기물량은 약 50만 t으로 전체 부원료의 30%를 차지한다. 환경오염도 방지하고 원료도 대체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두고 있는 것이다.
동양시멘트는 현재 채광 중인 광산이 5, 6년 후 고갈될 것으로 보고 강원 삼척시 근덕면 일대 54만 평(178만5000m²) 규모의 신광산 용지 개발에 착수했다. 동양시멘트는 2010년까지 2000억 원을 투자해 앞으로 30년간 3억 t 규모의 석회석을 채광할 수 있는 친환경 광산을 만들 계획이다. 새로 개발될 광산은 석회석 분쇄기를 터널 안으로 설치해 수직으로 굴을 판 뒤 석회석을 캐는 방식을 도입해 광산 채굴로 인해 훼손되는 면적을 최소화하고 소음도 줄이게 된다. 동양시멘트의 신광산 개발은 2000명의 고용을 창출해 삼척 지역 경제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정효진 기자 wiseweb@donga.com
▼동양시멘트 약사▼
―1957년 동양세멘트공업 설립
―1961년 강원 삼척에서 서울로 본사 이전
―1979년 동해공장 준공
―1985년 동양세멘트공업을 동양시멘트로 상호변경
―1995년 시멘트 누적생산 1억 t 달성
―1996년 업계 최초로 ISO 140001 환경인증 획득
―2000년 동양메이저와 합병, 동양메이저 시멘트 부문으로 상호변경
―2002년 동양메이저 시멘트부문 분리, 동양시멘트로 법인 독립
―2003년 동양메이저, 라파즈그룹으로부터 동양시멘트 지분 인수
―2006년 동양시멘트 금탑산업훈장 수훈
―2008년 국내 시멘트업계 최초 온실가스배출 감축 사업장 인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