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 개인간 갈등해소 수단에서 진실한 지도자의 덕목으로
12일 중국의 원자바오(溫家寶) 총리가 신화통신에 편지를 보냈다. 스승의 날 행사로 열린 교사좌담회에서 자신이 변질암을 화산암이라고 잘못 말한 것을 사과하는 내용이었다. 원 총리는 이 편지에서 “오류를 고치고 독자들에게 사과의 뜻을 전한다”고 말했다.
최근 들어 이처럼 한 사회의 리더가 공개 사과를 하는 경우가 점점 늘고 있다.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에서 2000∼2003년 ‘사과’와 ‘사과하다’가 포함된 기사의 수는 2003건이었다. 1990∼1994년 1193건에 비해 약 2배가 늘었다.
“분별 있는 자는 결코 사과하는 법이 없다”(19세기 영국 시인 랠프 에머슨)는 데서 이제 “책임의 시대에는 실수를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실수를 인정하고 다시는 그런 실수를 하지 않도록 하는 것”(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으로 ‘사과의 패러다임’이 바뀐 것이다.
저자는 미국 매사추세츠의대 학장이자 정신의학과 교수로 1992년부터 이 책을 쓴 2004년까지 사과에 관한 사례 1000여 건을 모았다. 그는 이 책에서 사과의 조건이 무엇인지, 사과가 어떤 효과를 낳는지를 흥미롭게 이야기한다.
사과의 첫 번째 단계는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다. 2003년 미국의 아널드 슈워제네거 캘리포니아 주지사는 과거 자신이 여성들을 성추행한 것에 대해 “원래 그러려고 한 것이 아니었지만…”이라고 애매한 표현을 써서 사과했다. 당시 미국 여성계는 “당신의 해명은 혐오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피해를 줬다니 유감입니다’라는 식의 선심 쓰는 듯한 표현이나 ‘잘못이 있을 수 있다’는 수동적 표현 역시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진심으로 후회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그 다음이다. 프레데리크 데클레르크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은 아파르트헤이트 강제정책에 대해 “저희는 이를 깊이 후회합니다.…깊은 후회란 제가 시계를 되감을 수만 있다면, 어떤 일이건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일이 이렇게 되는 것만은 피했을 것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라고 말하며 사죄했다. 그는 넬슨 만델라 전 남아공 대통령을 석방하고 흑백분리법을 폐지했다. 피해를 회복할 보상조치까지 한 것이다.
저자는 사과의 조건으로 7가지를 제시한다. △피해자의 손상된 자존심과 명예 회복 △보편적 가치를 공유한다는 믿음 재확인 △피해자는 잘못이 없다는 확인 △미래의 안전에 대한 확신 △가해자의 심적 고통 목격 △손해에 대한 합당한 보상 △상처를 표현할 의미 있는 대화 등이다. 이 조건을 갖출 때 사과는 비로소 손상된 관계를 치유하고 인간의 존엄성과 자존심을 회복시킬 수 있다.
저자는 아내와 함께 아이 8명을 입양해 키우면서 사과의 심리적 효과를 처음 깨달았다고 말한다. 수치심과 창피함을 이기고 솔직하게 사과할 때 아이와의 관계를 한 단계 더 발전시킬 수 있었다는 것이다. 저자는 “사과는 어느 누가 잘났고 옳은지 따지는 것이 아니라 갈등을 해결하는 특별한 방법”이라며 “과거 어느 때보다 가장 강력한 사회적 행위”라고 말한다.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