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엘레나/김인숙 지음/228쪽·9800원·창비
상처와 상실, 손에 잡히지 않는 삶의 불안과 두려움. 부조리로 가득 찬 세계와 생의 환멸을 일곱 편의 단편 속에 담아냈다. 김인숙 작가의 이번 신작 소설집에는 특히 아버지에 대한 애증이나 병, 죽음의 이미지가 빈번하다.
‘숨-악몽’은 아들이 병이 들어 움직이지 못하는 아버지를 죽이게 되는 비극적인 이야기다. 젊은 시절 병역 기피자였던 아버지는 어머니를 만난 뒤 아이들을 낳게 되자 별 수 없이 입대하고 결혼한다. 하지만 그는 삶에 특별한 애착도 열의도 없다. 준비나 계획 없이 어쩔 수 없이 떠밀려가며 하루하루가 반복된다.
군대에서 배운 기술로 밥벌이를 하게 된 아버지는 어머니가 느닷없는 사고로 돌아가신 뒤부터 급속히 병들고 늙어간다. 아버지는 어머니가 갓난아기였던 그를 죽이려고 한 적이 있었다는 비밀을 알려준다. 그것을 결정적인 순간을 위한 암시라고 받아들인 아들은 몸은 이미 병들어 시들고 목숨만 겨우 남은 아버지의 상체를 담요로 덮은 뒤 누른다.
표제작인 ‘안녕, 엘라나’는 젊은 시절 원양어선의 선원이었던 죽은 아버지를 회상하는 작품이다. 주인공은 아버지가 어머니와 이혼한 뒤 함께 살게 된다. 가정에서는 폭력적이고 무능력했지만 고단하고 외로운 삶을 살았던 아버지가 죽은 뒤 그는 충동적으로 이복동생 ‘엘레나’를 찾기 시작한다. 아버지가 술에 취해 “거기 항구의 엘레나는 다 내 새끼들”이라고 말했던 것을 마음에 뒀기 때문이다. 사표를 내고 여행을 떠난 친구에게 엘레나를 찾아봐 달라고 장난 삼아 부탁한 뒤 e메일로 세계 각국의 엘레나들의 사진을 접하면서 그는 점차 죽은 아버지와도 화해하게 된다.
딸이 낳은 사생아를 키우기 위해 홀로 브라질로 가 그곳에서 죽음을 맞이한 어머니의 삶을 다룬 ‘조동옥, 파비안느’, 고달픈 삶을 나름의 방식으로 견디며 상처를 공유하는 모녀의 이야기를 다룬 ‘산너머 남촌’ 등이 수록됐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