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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이인모]사북 진폐증 입원 169명 무조건 ‘방’ 빼라니…

입력 | 2009-10-17 02:30:00


“우리도 진짜 죽고 싶은 심정입니다.” “도대체 우리 진폐 요양 환자들은 어디로 가란 말이오.”

입원 중이던 진모 씨(71)의 자살 소식이 알려진 15일 강원 정선군 사북읍 사북연세병원의 진폐증 입원 환자들은 단식농성에 돌입했다. 진 씨는 이날 오전 8시경 병원 인근 뒷산에서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 조사에서 진 씨 가족과 환자들이 “진 씨가 최근 다른 병원으로 옮기라는 근로복지공단의 통지를 받은 뒤 매우 걱정해 왔다”고 진술한 것에 비춰볼 때 진 씨는 병원을 옮기는 문제를 고민하다 이를 비관해 자살한 것으로 보인다.

김성재 전국진폐자협회 사북연세병원지회장은 “요양 진폐 환자 상당수가 우울증을 앓고 있던 차에 다른 병원으로 가라는 통보까지 받아 참담한 심정이었다”며 “밀어붙이기식 행정이 불상사를 낳았다는 게 지금 우리들의 정서”라고 말했다.

병원을 옮기는 것은 비단 진 씨뿐만 아니라 진폐증으로 입원 중인 169명의 환자가 똑같이 당면한 문제다. 발단은 이 병원 일부 직원이 돈을 받고 진폐증 등급 판정을 조작한 사실이 경찰 수사에서 드러나면서부터다. 근로복지공단은 관련 규정을 들어 이달 8일 이 병원에 대한 산재보험 의료기관 지정을 취소했다. 산재보험 혜택을 못 받게 된 진폐증 환자들은 다음 달 16일까지 인근 정선읍, 태백시, 영월군 등의 산재보험 적용 병원으로 옮겨야 할 처지다.

그러나 사북 탄광 막장을 지켜온 이들이 정든 터전을 떠나 수십 km 떨어진 다른 병원으로 옮기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다. 환자들 대부분은 이 병원에서 5∼10년을 생활한 터라 내 집이나 다름없다. 간병하는 가족들 역시 불편해진다. 또 진폐증 환자들이 빠져나가면 이 병원은 존립 자체가 위태로워진다. 사북연세병원 김명선 원무과장은 “진폐 환자가 전체 입원 환자의 90%를 차지해 운영이 힘들어진다”며 “직원들은 고용이 불안해지고, 지역 주민들은 하나뿐인 종합병원이 사라질까 걱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환자들은 물론 지역사회도 나서 관계 기관에 선처를 호소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4일 병원 측은 산재병원 지정 취소에 대한 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을 법원에 냈다. 전국진폐재해자협회는 20일 사북연세병원에서 긴급 대의원회의를 갖는다.

그러나 이들의 요구가 관철될지는 미지수다. 이들의 딱한 처지를 고려해 원칙을 훼손하면서까지 결정을 번복하는 것이 옳은지, 불법 행위를 저지른 일부 직원 때문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고통 받아야 하는 것인지 명쾌한 답을 찾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정선에서

이인모 사회부 im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