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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칼럼/이태동]세계 고전속에 노벨상 해법있다

입력 | 2009-10-17 02:30:00


예로부터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고 했다. 근래에 와서는 책을 읽지 않는 계절이 가을이라고 하지만 출판가에서는 독서 불황의 계절에도 고전인 세계문학전집만은 밀리언셀러가 되고 있다. 그래서 국내의 유수한 출판사가 세계문학전집을 경쟁적으로 출판하는 중이다. 열악한 조건 속에서 출판사가 세계문학전집 출판에 노력을 쏟는 일은 다행스럽고 고마운 일이다. 제한된 지적 재산을 두고 너무나 많은 출판사가 경쟁을 하는 모습은 그렇게 바람직하지 않을 수 있지만 독자의 처지에서는 선택의 폭을 넓혀주므로 반드시 부정적으로만 볼 수 없을 것 같다.

영상매체와 게임산업의 영향으로 책을 읽지 않는 풍토에서 우리 국민이 세계문학전집에 이렇게 많은 관심을 보이는 현상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는 물론 자라나는 다음 세대를 위해서도 매우 바람직하다. 고전은 시공(時空)을 초월해 인간 경험의 참뜻과 삶의 비전을 제공하므로 독자의 교양과 인격을 높이는 데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물론 우리 문학 작품을 읽는 일이 중요하지만, 세계적인 고전을 읽고 국내 작품과 비교하며 미학적 경험의 폭과 시야를 넓히는 일은 더욱 중요하기 때문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일부 사람은 민족적인 것만을 주장하면서 세계로 시야를 넓히는 데 너무나 인색한 점이 없지 않았다. 이러한 태도가 아직 남아있다면 노벨상을 염원하며 문화 선진국을 꿈꾸는 우리 국민의 기대와는 상당 부분 배치될 것이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우리 문학이 지금의 수준에까지 오르게 된 데는 외국문학을 공부한 사람의 노력이 밑거름이 되어왔음은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문화란 민족이 아니라 인류의 차원에서 창조적으로 발전하기 위해 각국이 서로 교류해야 한다. 신라의 문화도 토속적인 것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서점가 ‘세계 전집’ 열풍 반가워

지금 우리 사회는 선진국으로 가기 위해 문화를 어느 때보다 중요시한다고 말하면서도 단기적인 이익과 편의만을 위해 눈에 보이지 않는 문화 인프라를 튼튼히 하는 일에 소홀하고 있다. 이를테면 문화의 핵심적인 부분을 차지하는 문학의 경우, 우리는 1980년대 이래 국제 언어인 영어만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독일어나 프랑스어 같은 제2외국어 교육에 관심을 전혀 기울이지 않았다. 대학에서도 독일어나 프랑스어를 전공하겠다는 학생이 해마다 줄어든다.

특정 언어로의 편중은 독문학과 불문학 분야에 인재 고갈 현상을 가져오는 징후로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이런 현상이 장기화하면 우리는 서구 문명의 중요한 축을 이루는 이들 두 나라의 문학이 제공하는 문화적인 젖줄을 상실하게 될 것이다. 혹자는 영어를 통해서 이들 나라의 문학을 알 수 있다고 말할지 모른다.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지적이라 생각한다. 독문학과 불문학이라는 거대한 산맥은 일생동안 두 나라의 언어와 문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의 헌신적인 노력이 없으면 제대로 정복하기 어렵다.

신화 비평이론에 따르면 ‘가장 토속적인 문학이 가장 세계적이다’. 수직적인 측면에서 볼 때 타당한 말이다. 그러나 토속적인 문학의 범위는 너무나 제한적이다. 우리는 우리 문학 발전을 위해 세계문학사 속에 면면히 이어오는 위대한 문학과 능동적으로 접촉하며 시야를 더 넓게 열어야 한다. 선진국인 서구의 여러 나라는 문화적으로 중요한 개별 국가의 문학을 전공하는 학과를 두고 있음은 물론 그들 나라의 문학을 통합적으로 연구하는 비교문학과를 두고 있다. 그래서 이론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능력을 인정받는 영문학자 가운데는 영문학자이자 비교문학자인 경우가 적지 않다. 미국 예일대에서 포스트모던 시대의 문학 이론을 정립한 대부분의 교수는 영문학자이자 비교문학자이다.

우리가 처한 상황에서 이런 수준에 도달하기는 물론 쉬운 일이 아니다. 영문학자가 한국 문학에 관한 창의적인 비교문학 논문을 쓰려면 국문학자만큼 한국문학을 이해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역으로 국문학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학생이 문학을 좀 더 전문적으로 깊이 있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세계문학을 통합적으로 연구하는 비교문학 교육을 받아야 한다. 눈에 보이는 실용성과 경제적인 이유로 비교문학과의 설립이 불가능하면 미국의 듀크대처럼 대학원 수준에서 비교문학 차원의 여러 어문학과 교수가 모여 문학을 강의하는 프로그램이라도 한번 시도해볼 만하다.

각국 문학 통합적 연구 절실

우리도 우리 문학의 수준을 한 단계 더 높이기 위해 비교문학 연구에 적극적인 관심을 보일 때가 됐다. 지금과 같이 독서를 하지 않는 시대에도 어느 출판사의 세계문학전집 판매 부수가 짧은 기간에 700만 부를 육박한다는 사실이 우리 문학의 세계화를 위한 비교문학 연구의 전망을 밝게 하기 때문이다. 척박한 여건에서 문화산업의 기초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출판 관계자와 비교문학에 관심을 갖는 연구자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이태동 문학평론가·서강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