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 총리는 방북 둘째 날인 5일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함께 평양 ‘5월 1일 경기장’에서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을 관람했다. 국제사회에서 아동학대라는 비난을 받고 있는 공연이다. 8월 방북 때 관람을 거부한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과 대비된다. 클린턴은 김 위원장이 “아리랑 공연 입장권이 있으니 함께 보자”며 세 번이나 졸랐지만 응하지 않았다.
원자바오와 클린턴의 차이
북한은 충실하게 김 위원장의 들러리 역할을 한 원 총리를 선전용으로 적극 활용했다.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원 총리가 북한에 머문 사흘 동안 관련 기사로 지면을 도배하다시피 했다. 5일은 1∼3면을, 6일은 1∼4면을 중국 총리 관련 기사로 채웠다. 노동신문은 겨우 6면을 발행한다.
원 총리 방북을 문제 삼는 이유는 북한의 올 한 해 행동에 대한 결산 성격이 강하기 때문이다. 북한은 올해 하고 싶은 일을 맘껏 했다. 4월에는 장거리 로켓을 발사했고, 5월에는 2차 핵실험을 했다. 김정일은 4월 국방위원장으로 재추대됐다. 현대아산 직원과 미국 여기자 2명을 장기간 억류해 한국과 미국을 흔들었다. 국제사회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도, 인정할 수도 없는 행동이지만 북한은 나름대로 계획에 따라 움직였다.
북한이 올해 저지른 일들을 중국식으로 결산하면 앞날이 암울해진다. 중국의 지지와 함께 상당한 경제적 선물을 챙긴 북한은 당분간 핵 문제를 고민할 필요가 없게 됐다. 북한은 요즘 100일 전투를 벌이면서 “당과 인민이 부귀영화를 누리게 됐다”는 허풍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중국이 국제제재를 무디게 하는 역할을 자임하고 나섰으니 이제는 안심하고 주민들에 대한 통제와 거짓선전을 강화하는 것이다.
대북 쌀 지원 논의는 춘궁기에
북한이 아무리 만성적인 식량난에 시달린다 해도 지금은 추수철이다. 넉넉하진 못하지만 가을에는 곳간에 쌓을 쌀이 생긴다. 지금 북한에 쌀을 보내면 군량미 창고로 갈 게 뻔하다. 대북 쌀 지원이 필요하다고 하는 사람들도 북한의 버릇을 고칠 생각이 있다면 시와 때를 가려야 한다. 북에 쌀을 보내야 한다면 내년 봄 춘궁기 때 논의해도 늦지 않다.
노동신문은 12일자 1면에 게재된 사설에서 ‘올해는 강성대국의 대문을 열어제끼는 데서 분수령이 되는 관건적인 해, 앞으로 10년 20년을 좌우하게 될 참으로 중요한 해’라고 주장했다. 그들 말대로 올해는 남북관계에 분수령이 될 중요한 시기다. 북한 주민의 행복과는 반대 방향으로 가는 북 정권에 도움을 줄 것인가. 김 위원장이 자기 생각대로 남북관계가 돌아가지 않는다는 사실만이라도 절감하게 할 것인가. 북한의 도발을 남한의 지원으로 보상하는 일은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된다.
방형남 논설위원 hnbh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