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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손기웅]“독일, 어렵지만 분단보다 낫다”

입력 | 2009-10-19 03:00:00


독일 남부지역 뮌헨과 북부지역 베를린에서의 유학 시절에 독일 친구들에게 통일을 원하느냐고 물었다. “아니. 동독이 사회주의를 한다고 하니 그들끼리 잘 살라고 해라. 왜 통일을 하여 세금도 더 많이 내고 골치 아픈 어려움을 겪어야 하느냐!”는 것이 언어, 기질이 확연히 다른 그들의 한결같은 대답이었다.

현지 전문가 “모든 나라의 문제일 뿐”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간 브란덴부르크 개선문에서 본 역사적 현실은 ‘하나의 민족’이었다. 거기에는 계산적 이성이 아니라 민족적 감성으로 가득 찬 독일인만이 있었다. 기쁨에서 우러나오는 눈물과 환희만 존재했다. 얼마 후 냉정한 계산이 다시 시작됐다. 서쪽에서는 높아지는 세금, 어려워진 생활환경, 뭔가를 줘도 고마워하지 않는다는 동쪽에 대한 괘씸함에, 동쪽에서는 실업, 새로운 사회체제에 대한 부적응, 서쪽이 자신들을 ‘2등 국민’ 취급한다는 불쾌감에 불만을 가졌다.

통일을 연구하는 학자로서 이런 문제와 마주했다. 통일 6년이 되던 즈음에 독일에 문제점을 물었다. 어느 전문가가 이렇게 대답했다. “이제 더는 문제, 문제 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이제 아무 문제도 없습니다. 이러한 문제가 없는 나라가 세상에 어디 있습니까? 낮은 동독 수준의 경제를 세계 최상위의 서독 수준으로 끌어올리려 하는데, 사회주의 사회를 자유민주주의 사회로 탈바꿈시키려는 데 어려움이 없겠습니까? 동서 주민 간의 갈등을 이야기하는데 당신의 나라에는 지역 간에 문제가 없습니까? 민주화된 미국에는 인종적, 문화적 갈등이 없습니까? 그것이 몇십 년이 지나도 사라집니까? 독일은 통일로 인한 문제점은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 사회를 더 건강하고 강력하게 만들기 위해 약간의 어려움을 겪고 있을 뿐입니다.”

많은 사람이 통일 과정에서 동서독 간 화폐의 일대일 교환, 동쪽에 대한 대폭적인 경제지원과 같이 경제적 고려를 무시한 정치적 결정이 통일 이후 경제적 사회적으로 큰 어려움을 초래했다고 주장한다. 이들에게 묻는다. “그런 정치적 결단이 없었더라면 과연 동독인이 서독을 받아들여 조속하고 평화적인 통일과 통합을 선택했을까요?”

경제적 부담과 어려움 때문에 통일을 천천히 했어야 한다는 여론이 독일에서 대세가 됐다. 부분적으로는 맞는 말이다. 그러나 급변했던 당시의 상황에서 정치적 의지와 결단이 없었더라면 제2차 세계대전의 전승국 4개 나라를 포함한 주변국이 “그래, 통일을 천천히 해라. 지켜봐주며 도와주겠다”고 했을까? 동독 주민이 인내할 수 있었을까?

남북한 통일, 국민의지 통일할 때

통일된 독일은 큰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주권을 완전히 회복했고, 라인 강이 아니라 이제는 ‘엘베 강의 기적’을 바라보며 유엔안전보장이사회의 상임이사국 자리를 공개적으로 주장한다. 전 세계에 당당하게 군대를 파견하고 유럽통합의 기관차 역할을 자임한다. 동서 간의 갈등도 있지만 동쪽 출신이 연방총리이고 축구국가대표팀의 주장이다. 어려움을 이야기해도 통일 이전의 분단 시절로 돌아가자는 외침은 들리지 않는다.

통일을 이끌어낼 수 있는 상황이 한반도에 도래한다면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가능한 한 빨리 통일을 이룩하는 일이 민족대계에 맞는다. 주변 정세가 언제 어떻게 바뀔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통일 이후에 닥칠 어떠한 어려움도 차분하게 장기적으로 극복해야 할 일상적인 국가적 과제일 뿐이다. 일제로부터 벗어나 광복을 맞은 후 겪었던, 6·25전쟁이 끝나고 겪었던 어려운 삶을 은근과 끈기로 후세를 위해 꿋꿋하게 감내하고 걸었듯이. 베를린 장벽 붕괴 20주년을 바라보면서 통일에 대한 국민적 의지를 다시 한 번 통일할 때이다.

손기웅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