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주머니 속 동전을 짤짤거리며 찾아간 동네 오락실. 그곳엔 으레 오락기 두 대를 맞대고 ‘대전’을 벌이던 동네 형들이 있었다. 근육질 캐릭터 가일의 반달차기, 인도 캐릭터 달심의 사지 늘여 공격하기, 류의 필살기 ‘하도겐’까지.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 초반까지 오락실을 강타한 캡콤의 ‘스트리트 파이터’는 이후 ‘철권’, ‘버추얼 파이터’, ‘사무라이 쇼다운’ 등 2인 격투 대전 게임 붐을 일으키며 전국 오락실을 평정했다.
게임을 할 때는 ‘태권도 하는 한국인 캐릭터도 있었으면 얼마나 잘 싸웠을까’ 하는 아쉬움도 한번씩 들었다. 그런 한국 팬들의 뜻이 통한 것일까. 캡콤은 내년 봄 발매 예정인 ‘스트리트 파이터4’의 업그레이드 버전인 ‘슈퍼 스트리트 파이터4’에 태권도를 구사하는 한국인 여성 캐릭터 ‘한주리’를 만들겠다고 최근 발표했다.
―배우 손예진의 어떤 모습을 ‘한주리’에 담으려 했습니까.
“손예진 씨가 출연한 영화나 인터뷰를 보면서 청초하고 귀여운 이미지 속에 상반된 ‘소악마(팜파탈)’적인 이미지를 발견할 수 있었어요. 한주리 역시 외모는 귀엽지만 싸울 때는 상대를 포로로 만들어버릴 정도로 강렬한, 상반된 이미지를 담으려 했답니다.”
―마케팅 차원에서 한국인 캐릭터를 만든 것인가요.
“단순히 한주리라는 캐릭터 하나를 등장시키는 것에서 더 나아가 그 캐릭터 안에 한국문화에서 느낄 수 있는 ‘강함’ ‘긍지’ 같은 것을 심고 싶었습니다. 이를 가장 잘 배울 수 있는 한국 역사 속 인물을 찾던 중 이순신 장군이 떠올랐죠. 그의 업적을 취재하기 위해 서울, 부산, 경남 통영 등을 돌기도 했습니다.”
“한국시장에서 ‘대박’만을 꿈꾼다면 ‘몬스터헌터 프런티어’ 같은 온라인 게임을 계속 선보여야겠죠. 하지만 스트리트 파이터를 내놓는 것은 지금은 기성세대가 돼 버린 1990년대 초기 게이머들에게 ‘꿈’을 선물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래픽이 현란해졌고 평면에서 입체로 바뀌었지만 속전속결로 결말나는 게임 방식은 여전히 한국인에겐 ‘쫀득쫀득’할 겁니다.”
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