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 ‘憲問(헌문)’의 둘째 章이다. 앞 章에 이어 原憲(원헌)이 질문하자 공자가 대답한 부분이다. 주자(주희)에 따르면 克伐怨欲의 克은 남 이기기 좋아하는 好勝(호승), 伐은 자기 자랑을 하는 自矜(자긍), 怨은 남을 원망하는 忿恨(분한), 欲은 욕심을 부리는 貪欲(탐욕)이다. 仁者라면 이런 편벽된 감정을 억제할 수 있겠지만 이를 억제한 사람이 곧 仁者는 아니다. 공자는 仁者라면 克己復禮(극기복례)와 忠恕(충서)를 실천해야 한다고 보았다. 단, 정약용은 克伐을 타동사 剋攻(극공)으로 보고 怨은 자기에게 없음을 한스럽게 여기는 일, 欲은 남의 것을 탐하는 일이라고 풀이했다. 조선 학자들은 주자의 설을 따랐다. 可以爲는 ‘∼라 할 수 있다’이다.
정조대왕은 규장각 문신들에게 “克伐怨欲을 행하지 않음이 克己復禮만 못한 것이 아닌데, 공자가 仁으로 인정하지 않은 것은 어째서인가?”라고 물었다. 모범답안은 이러했다. “극기복례는 극벌원욕이라 할 만한 것 자체를 아예 없게 만드는 것입니다.” 양명학자 羅洪先(나홍선)도 克과 怨을 행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은 제2의의 공부이며, 마음의 본체에 대해 공부하는 것이 제1의의 공부라고 주장한 바 있다.
조선후기의 여성 학자인 師朱堂(사주당) 李氏는 극심한 당쟁의 원인이 지식층의 克과 怨에 있다고 보았다. 도덕군자라는 이들이 참된 공부를 하지 못해서 그런 편벽한 감정을 지녀 세상에 해악을 끼치고 있다고 개탄한 것이다. 이 비판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하다.
심경호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