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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남북 정상회담 하려면 이젠 南에서 하라

입력 | 2009-10-20 03:00:00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이명박 대통령에게 평양을 방문해 달라고 초청했다는 미국 국방부 고위관계자의 14일 발언은 오해에서 빚어진 해프닝이라고 한미 양측이 밝혔다. 그러나 북한이 최근 유화적 태도를 보이면서 남북 정상회담에 관한 언급이 이곳저곳에서 흘러나오는 것은 심상치 않다. 올 8월 김대중 전 대통령 장례식 때 북한 조문단으로 온 김기남 노동당비서가 청와대에서 이 대통령을 만났을 때 ‘남북관계가 진전되면 정상회담도 할 수 있다’는 원론적 언급이 있었다고 한미 관계자들이 설명하고 있다. 이달 초 베이징에서 열린 이 대통령과 원자바오 중국 총리의 정상회담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왔다고 한다.

북한이 남북 정상회담에 부쩍 적극성을 보이는 것은 북-미 대화가 속도를 내지 못하는 데다 국제사회의 대북제재가 여전히 풀리지 않자 정상회담으로 상황을 돌파해 보려는 속셈인 듯하다. 한반도 평화와 민족의 장래를 위해서라면 언제든 김 위원장을 만날 수 있지만 만남을 위한 만남은 안 된다는 것이 이 대통령의 기본인식이다. 북핵이 해결되지 않은 마당에 우리가 남북 정상회담에 매달릴 이유가 없다는 점에서 이 대통령의 인식은 옳다고 본다.

북핵문제를 둘러싼 제재 국면이 8월 이후 대화·협상 병행 국면으로 전환됐지만 북측은 여전히 북핵 포기 의사를 공표한 적이 없다. 북핵문제에 아무런 진전이 없는 상태에서 남북 정상회담을 열어본들 북의 핵개발을 사실상 용인하고 위기만 키우는 꼴이 되기 쉽다.

2000년과 2007년 열린 두 차례의 정상회담에서 남북 정상은 최대 현안인 북핵 해결을 회피했다. ‘우리 민족끼리’라는 수사(修辭)만을 앞세운 북측의 의도에 끌려다니며 대규모 대북 경제지원의 부담만 후임 정부에 안겨주었다. 두 번씩이나 정상회담을 한 터라 남북 정상회담에 대한 국민의 기대도 크지 않다. 진정 핵을 포기한 바탕 위에 남북 간 공생·공영의 길을 열어나가겠다는 김 위원장의 결심이 서야 비로소 남북 정상회담이 의미를 가질 것이다.

북은 회담 형식에 관해서도 ‘상전이 머슴 부르듯’ 평양으로 한국 대통령을 불러들여 일방적 주장과 요구를 관철하려는 의도를 버려야 세 번째 정상회담이 성공할 수 있다. 김 위원장이 진정성 있는 남북 정상회담을 하겠다면 2000년 6·15선언에서 약속한 대로 ‘서울 답방’ 약속을 지켜야 한다. 서울이 어렵다면 최소한 남한 내 다른 곳에 와서라도 북핵을 포기하고 함께 번영하는 길로 나가겠다고 천명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