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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을 원망하며 살던 내가 물었다

입력 | 2009-10-21 03:00:00


 [소설가 공지영씨 ‘세네갈 경험’ 특별기고]

신을 원망하며 살던 내가 물었다
그 많은 혜택 왜 내게만 주셨나요


10일 세네갈 디우르벨을 찾은 소설가 공지영 씨가 어린이들의 환영을 받고 있다. 사진 제공 어린이재단

세네갈은 아프리카에서 최빈국은 아니다. ‘끝에서 열 번째라니 당장 기근이 들어 사람들이 굶어 죽어가는 곳에 비하면 그래도 살 만한 곳일 것이다’라고 방심한 것이 잘못이었다.

지난해 최빈국 1위 에티오피아와 우간다를 다녀온 후 더 이상의 충격은 없을 거라는 생각도 오만이었다. 세네갈 수도 다카르에서 4시간여를 달려 들어간 내륙지방 디우르벨에 다다랐을 때 나는 비로소 이 검은 대륙이 내 알량한 양심과 신앙이 시험받는 땅임을 깨달았다.

그것은 단지 농작물이 자라야 할 곳에 펼쳐진 쓰레기 더미들, 우기의 끝 무렵인데도 눈을 흐리게 만드는 먼지들(건기에는 거의 숨을 쉴 수가 없을 지경이라고 한다), 황사 먼지 속에서 아침이면 일어나 동냥그릇을 들고 몰려나오던 조그만 소년들, 그들의 찢어진 옷과 더러운 맨발, 숙소에서 자주 나가던 전기, 식탁 위를 과감히 활보하던 아기 손바닥만 한 바퀴벌레 때문만은 아니었다.

지난번 에티오피아 방문 때 그래도 이 빵을 먹고 나면 이들의 삶이 조금 나아질 것이라고 믿었던 내 오만함에 대한 자책 때문이었다. 하루에 1달러를 가지고 11명의 식구가 먹고사는, 그러니까 적어도 굶어서 죽지는 않는 그들의 눈에도 에티오피아의 난민이 가졌던 공통점이 있었다. 그것은 초점 잃은 눈동자였다.

겨우 죽지 않을 만큼의 빵을 먹고 하루를 사는 그들에게 내일이라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열세 살에 아이를 낳다가 척추를 다치고 귀가 먼 열일곱 살의 미혼모는 ‘꿈이 있어요?’라는 내 질문에 젓가락만 한 팔다리를 숨기며 “양고기를 한번 먹어 보고 싶어요. 일어나 걷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그때 그녀를 만난 지 한 시간여 만에 처음으로 미소가 어리는 것도 보았다. 그 미혼모가 그토록 어여쁘지 않았다면 내 가슴이 좀 덜 아팠을까? 수백만의 미혼모들이 이런 식으로 절망에 빠져 있는 이 나라, 그러나 그녀의 막내 동생 카딘은 내가 꺼내든 볼펜을 감히 만져 볼 생각도 못하며 말했다. “학교에 다니고 싶어요.”

작은 푼돈과 보잘것없는 선의가 거대한 가난과 착취와 모순을 이길 수 있을지 나는 가끔 절망에 빠진다. 더위와 악취가 해일처럼 우리를 덮칠 때 무언가를 건설하는 일은 희망처럼 더디고 작다. 그럴 때면 마더 테레사의 말을 떠올린다. ‘우리가 하는 일은 거대한 대양에 물 한 방울을 보태는 일처럼 보잘것없지만, 그 한 방울이 없다면 바다도 없다’는 그 말.

나는 그저 커피 값을 아낀 2만 원으로 그 아이들의 학비를 대주고 연필을 사줄 수 있을 뿐이다. 모기장을 사줄 수 있고 수도관 30cm를 연장해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래도 학교에 가면 무언가 다른 내일이 우리를 기다린다는, 어쩌면 결정적인 희망의 빛을 줄 수 있기를 기원하면서 말이다.

오늘도 우간다와 에티오피아 혹은 시에라리온을 도우러 또 다른 팀이 떠났다. 그들이 돌아오면 또 다른 팀이 떠날 것이다. 그러면 하나의 수도, 하나의 학교, 하나의 화장실이 세워질 것이다. 오늘은 한 아이가, 내일은 그 이웃집 아이가 비로소 학교로 갈 수 있을 것이다. 나와 내 친구와 내 친구의 친구가 조금만 마음을 열면 그 옆집 아이도 학교에 갈 수 있을 것이다. 이런 희망이 없다면, 나의 아프리카 방문은 아무 의미도 없을 것이다.

나는 살면서 가끔 신에게 물었다. 대체 뭘 그리 잘못했다고 내게 이런 벌을 내리십니까. 43도를 오르내리는 더위 속에서 망연히 앉아 있다가 내가 물었다. 대체 뭘 잘했다고 내게 그 많은 혜택을 주셨습니까? 어쩌면 이번 방문에서 온전히 도움을 얻고 온 사람은, 실은 나였던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