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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이야기]士而懷居면 不足以爲士矣니라.

입력 | 2009-10-21 03:00:00

선비이면서 편안한 처지에 연연한다면 선비일 수가 없다.




‘논어’ ‘憲問(헌문)’의 셋째 章에서 공자는 선비가 지녀야 할 지향의식에 대해 간접적으로 말했다. 懷居는 현재 安住(안주)하고 있는 마을, 가정, 지위에 戀戀(연연)하는 모습을 말한다. 정약용은 가정생활과 전원생활의 즐거움을 그리워함을 가리킨다고 보았다. 조선 전기의 宋純(송순)은 악습을 쌓는 積習(적습)과 미혹을 고집하는 執迷(집미)로 풀이했다.

士 즉 선비는 壯大(장대)한 뜻을 실천하는 존재이기에 처지나 조건에 연연해서는 안 된다. 과거에는 사내아이가 태어나면 桑弧(상호·뽕나무로 만든 활)와 蓬矢(봉시·쑥대로 만든 화살)를 천지사방에 쏘아 雄飛(웅비)를 기원했다. 공자가 천하를 周遊(주유)하고 맹자가 제후를 순방한 것은 懷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晉(진)나라 文公인 重耳(중이)는 즉위 전에 오랜 기간 망명생활을 했다. 부친 헌공이 驪姬(여희)의 참소에 속아 태자 申生을 죽이자 외국으로 달아나고, 아우가 왕(혜공)이 되어 죽이려 하자 齊(제)나라로 망명했다. 제나라 桓公(환공)이 사위로 삼자 중이는 현실의 안락함에 도취해서는, 아내가 “懷安(회안)은 명성을 무너뜨리게 됩니다”라고 타일러도 듣지 않았다. 懷安이 곧 懷居다. 결국 가신들이 그를 술에 취하게 한 후 수레에 싣고 제나라를 떠났다. 중이는 방랑 끝에 혜공의 아들 회공을 몰아내고 즉위해서 선정을 베풀었다.

주자의 시로 잘못 알려진 일본 승려 月性의 ‘勸學(권학)’에 보면 “남자라면 뜻을 세워 고향을 떠나, 배움을 못 이루면 죽어도 돌아오지 않는 법이다. 뼈 묻을 곳이 공동묘지뿐이랴. 인간세상 도처에 청산이 있거늘”이라 했다. ‘人間到處有靑山(인간도처유청산)’은 懷居하지 않겠다는 뜻을 잘 드러냈다. 성별에 관계없이, 인간 주체라면 누구나 懷居懷安하지 말고 웅대한 뜻을 실천해야 하리라.

심경호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