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광주로, 혼자 내려온 건 아닙니다. 박기남(28·KIA·사진)의 곁에는 절친한 형 김상현이 있었으니까요. “올해는 우리 가능성을 폭발시켜 보자”고, 겨우내 같이 의기투합했던 ‘동지’였습니다. 그런데 2009 시즌 시작과 동시에 나란히 트레이드 통보를 받은 겁니다. 눈물이 핑 돕니다. 광주로 내려오는 길에, 말없이 창밖을 바라보다가 다시 마주 보고 허허 웃어볼 뿐입니다.
박기남은 전북 정읍에서 태어났습니다. 하지만 네 살 때 서울로 이사했습니다. 사실상 서울 사람이나 마찬가집니다. 가족도 친척도 친구도 없는, 낯선 광주. 그래도 김상현이 있어 다행이었답니다. 윗집, 아랫집에 살면서 이웃의 정을 나눴습니다. 김상현 부부에게 저녁밥도 자주 얻어먹고, 함께 고스톱을 치면서 외로움도 달랬습니다. 그래서 더 쓸쓸했을지도 모릅니다. 이적 직후부터 둘의 명암이 엇갈렸으니 말입니다. 한동안 나란히 달려왔는데, 어느새 뒷모습을 바라봐야 하는 처지. “사실 제 존재를 잊고 있는 분들도 많았으니까…. 처음엔 부럽고 속상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괜찮아요. 올 겨울에 열심히 해서 내년에 주전으로 발돋움 하면 되죠.” 역경을 의지로 바꾸는 방법쯤이야, 이미 배웠습니다. 지난해 상무에서 발목 인대가 끊어졌을 때 말입니다.
사실 광주는 그에게 ‘기회의 땅’이기도 했습니다. 꼼꼼한 수비력을 인정받았고, 꾸준히 1군에 머물 수 있었으니까요. 게다가 이적 첫 해부터 팀이 정규시즌에서 우승했습니다. 꿈에 그리던 한국시리즈 무대. 2004년 입단 이후 ‘가을잔치’가 뭔지 모르고 살아왔던 그입니다. 한국시리즈 1차전이 열린 광주구장 덕아웃에서 물끄러미 그라운드를 바라보다가, 문득 온 몸에 소름이 돋고 떨리더랍니다. “내가 정말 포스트시즌을 앞두고 있구나, 싶었어요. 친한 LG 동료들에게 ‘부럽다’는 전화도 받았고요.”
박기남은 지금 무척 행복합니다. 그가 LG에서 왔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사람보다 ‘진짜 KIA맨’으로 여겨주는 사람이 훨씬 많으니까요. 스스로도 KIA에 오랜 시간 몸담았던 것 같은 느낌이랍니다. 그만큼 정이 많고 끈끈한 팀이라는 겁니다. “직접 경기에 나서도 좋아요. 내내 벤치만 지켜도 좋고요. 팀이 우승만 할 수 있다면, 제 자리가 어디라도 상관 없습니다. 뭐든지 할 수 있어요.” 데뷔 6년 만에 처음 알게 된 우승의 기쁨. 그래서 더 쉽게 포기할 수 없다는, 전천후 내야수 박기남의 열망입니다.
스포츠부 기자 yeb@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