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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세상/정영진]‘우주 분쟁법’ 연구 박차를

입력 | 2009-10-22 03:00:00


미지의 세계에 대한 인간의 동경과 욕망을 상징하는 그리스 신화 이카로스 날개(Wings of Icaros)는 이소연 우주인의 국제우주정거장 체류와 나로호 발사를 지켜본 우리에게 더는 고대의 신성한 이야기가 아니다. 그러나 “아직도 우주에 있는 게 믿어지지 않습니다”라는 첫 교신 대화의 흥분과 나로호 1단 로켓 점화불꽃의 선명함의 이면에는 항상 위험이 도사린다. 1996년 발사 22초 만에 마을 인근 상공에서 폭발하여 200여 명의 사망자와 가옥 80여 채의 파손(미국 주장)을 야기한 중국 발사체 Long March-2E가 단적인 예이다. 문제는 이런 사고가 자국민뿐만 아니라 외국정부기관 및 외국인에게 피해를 가져올 수 있어 국가 간 분쟁으로 직결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우주손해배상협약은 두 가지 분쟁해결 방법 즉, 외교교섭과 청구위원회의 중재를 규정했다. 청구위원회의 결정은 분쟁당사국이 동의한 경우에만 최종적이며 기속력을 갖는다. 중재에 의한 분쟁해결은 우주손해배상협약 체결과정에서 우주강국과 비우주강국 간 이견을 좁히기 위한 브라질의 절충안이었지만 당시 조약 당사국은 규정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실례로 코스모스 954 추락 당시, 캐나다의 소련에 대한 배상청구에서 이 협약이 적용되지 않았다.

하나의 분쟁에 여러 국가가 관련되는 것이 요즘의 일반적인 상황이다. 예를 들면 A라는 나라가 자국의 사막화 추이를 관찰하기 위해 2011년 초에 인공위성 발사를 계획했다고 가정하자. 우주기술이 미약한 A국은 인공위성 제조를 한국 기업에, 발사체를 러시아 기업에 그리고 실제 발사는 프랑스의 기아나 우주센터에 맡길 수 있다. 인공위성 1기 발사에 4개국이 참여하는 셈이 된다. 문제는 발사체 비행 중 폭발 및 추락으로 해당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거나 인공위성의 성공적인 궤도 진입 후 발사체의 파편이 지상으로 추락하여 타국에 손해를 미쳤을 때 4개국 중 누가 책임을 지는가이다.

책임소재는 유엔 우주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위원회의 법률 소위원회에서 오랫동안 논의했지만 아직까지 어떤 합의점도 찾지 못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1990년대 초반 유럽 학계를 중심으로 유엔 산하에 국제우주법중재재판소를 설립하려는 논의를 진행했지만 지금은 답보 상태에 있다. 또 프랑스 항공우주법학회의 노력으로 1994년 파리에 국제항공우주중재재판소를 설립했지만 해결을 부탁받은 사례는 단 하나도 없다. 특정 국가의 학회 주도로 설립된 재판소에 막대한 비용이 소요된 우주활동에 관한 소송을 부탁할 국가가 있을 리 만무하다.

우주활동은 평화적 목적과 국제협력을 원칙으로 한다는 점에서 사법적 절차에 의한 분쟁해결 방식을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분쟁이 발생할 경우를 대비해 인공위성 및 발사체 제조 그리고 발사계약 시, 계약서에 상호 소송포기 조항을 삽입하는 것이 현재의 관행이었다.

하지만 올해 2월 10일 시베리아 타이미르 반도 약 800km 상공에서 미국의 상업통신 위성 이리디움 33과 기능이 중단된 러시아 통신위성 코스모스 2251이 충돌하면서 분쟁 해결을 위한 새로운 법 구조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충돌로 발생한 파편은 우주에서 기능 중인 제3국 인공위성과의 제2차 충돌 가능성이 있어 분쟁이 연차적으로 발생할 수 있어서다. 우주강국에로의 본격적인 진입을 시도하는 우리로서는 새로운 분쟁 해결 방법을 제시하는 것도 우주강국으로서의 기초를 닦는 일이라 생각된다.

정영진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선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