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편전쟁 이후 가졌던 ‘백년의 국치’를 뒤집었고 문화대혁명을 통해 극단적 이념이 주는 폐해를 학습했으며, 또 소련과 동유럽의 몰락을 통해 불거진 ‘중국붕괴론’을 딛고 일어선 중국의 부상은 당위적인 것처럼 보인다. 돌다리도 두들기면서,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강대국화의 길을 걸어가는 중국의 비상은 가히 충격적이다. 지난 60년간 국내총생산(GDP)이 무려 77배나 증가했으며 연평균 성장률도 8.1%에 달했다. 현재 중국의 1일 공업생산량은 1952년 1년 치에 상응하는 양이다. 1978년에는 1.8%에 불과했던 세계경제에서 차지하는 중국의 비중도 2008년에는 6.4%를 점했다. 그뿐만 아니라 교역총액이나 외환보유액에서도 중국은 이미 세계 1위를 고수하고 있다.
“中,일어섰다” 마오쩌둥의 메아리
수 년 전 미국의 한 중국전문가는 중국의 체제성격을 정의하는 학술적 용어의 수가 무려 20여 가지나 됨을 밝혔다. 한마디로 중국이 어디로 가는지를 체계적으로 규명하기가 쉽지 않다는 얘기이다. 중국의 공식담론에서 주로 사용되는 ‘중국적 특색을 지닌 사회주의’도 결국은 종착점이 아직 정해지지 않은 미완의 여정(旅程)임을 인정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중국 역사상 어느 때보다도 부유하며 또 외침의 위협이 적은 상태에서도 그림자는 존재한다. 개혁 개방 자체가 변화의 연속일 수밖에 없고 이는 필연적으로 여러 가지 문제를 배태했다. 도시와 농촌 사이에, 연해와 내륙지역 간, 계층간의 격차 문제는 이미 주지의 사실이다. 빈부 격차의 정도를 표시하는 지니계수가 1978년의 0.31에서 지금은 무려 0.5에 육박하고 있어 ‘중국의 라틴아메리카 닮아가기(中國的拉美化)’에 대한 논쟁까지 일고 있다. 또 중국 전역에서 매년 10만 건 이상의 불법시위가 일어나 정부가 “안정유지가 관건(穩定壓倒一切)”임을 외쳐온 것도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에 더해 작년에 발발한 티베트 사태와 금년 들어 불거진 신장(新疆) 지역의 위구르인 독립시위는 중국이 앓는 ‘내과적 질환’의 증상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최근에 발간된 중국정부의 소수민족정책백서에서 이 사건들을 전혀 언급하고 있지 않음은 이 문제의 심각성을 입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중국정부가 융화(融入)와 조화(和諧)를 강조하면 할수록 중국사회가 지닌 다원성과 분절성은 커진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2008년 기준으로 1인당 평균소득 3292달러를 기록한 중국에서 향후 생계유지를 넘어서는 ‘삶의 질’, 즉 정치참여 등에 대한 요구가 조직적으로 나타날지도 주목의 대상이다.
중화주의적 정서 주도권 쥔다면…
1990년대 후반 ‘중국은 아니다 라고 말할 수 있다(中國可以說不)’로부터 최근의 ‘중국은 기분이 썩 좋지 않다(中國不高興)’에 이르기까지 베스트셀러에서 드러나는 민족·중화주의적 정서가 주도권을 쥔다면 이는 국제사회뿐만 아니라 중국을 위해서도 그리 긍정적이지 않을 것이다. 세계는 중국의 겸손한 성숙함이 지속되길 고대하기 때문이다.
정재호 서울대 외교학과 교수·중국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