씁쓸 떨떠름한 녀석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커피와의 첫 인연은 동아일보사를 통해서였다. 아마도 1975년 2월, 고등학생 때로 기억한다. 동아일보 백지광고 사태가 났을 때 친지의 심부름으로 동아일보사를 찾아가 봉투를 내고 나오다 동네 대학생 형을 만났다. ‘고삐리가 어마어마한 일을 한 것’으로 착각한 형은 나를 다방이라는 데로 데리고 가 ‘이상한 음료’를 사주었는데, 그것이 바로 커피였다. 물론 내가 왜 동아일보사에 들렀는지 묻지 않은 채 “그래, 너 같은 고교생이 있어서 좋구나, 좋아”를 연발하며, 커피를 들이댔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거짓말을 한 셈인데, 그래서일까 처음 마셔본 커피는 정말 썼다. 설탕을 넣었다지만 한약 같다고나 할까. 지금도 커피를 마실 때면 그때의 느낌이 되살아난다. 의도하지 않은 거짓과 암묵적 동의 속에 이루어진 거짓말이 내게 커피의 첫 느낌이 된 셈이다.
세 번째 기억은 좀 더 지난 1980년대 후반의 일이다. 전공이 민속학인지라 농어촌을 다니며 민속조사를 하던 때다. 인심이 넉넉한 촌부는 조사자를 반갑게 맞으며, 커피를 내왔다. 당시 시골에서 커피라는 것은 ‘현대식 문화생활’의 상징이었다. 문제는 냉면사발만 한 그릇에 커피와 설탕을 듬뿍 넣어 내놓는 그들 나름의 제조방식이었다. 물론 크림은 넣지 않은 채. 최상 접대의 의미로 내온 것이니 당연히 감사의 표정으로, 그래서 맛있다는 말을 연발하며 억지로라도 다 마셔내야 했다. 그때의 커피는 정말 머리가 어질할 정도로 단맛이었고, 무조건 마셔야 하는 체면치레용이었다.
장장식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