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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가 실직 임원 자제들 금융위기로 확 바뀐 삶

입력 | 2009-10-23 03:00:00

명품車 몰며 돈 펑펑 쓰다 학비 구하려 술집서 알바




스물한 살 대학생 숀 오닐 씨는 올 여름방학에 술집 두 군데에서 종업원으로 일하며 수영장 감시원 아르바이트까지 했다. 미국 보스턴 교외의 부유한 가정에서 자란 그가 이렇게 낯선 경험에 뛰어든 것은 지난해 금융위기 여파로 무너진 리먼브러더스 계열사의 중역이던 아버지와 뱅크오브아메리카 임원이던 어머니가 올해 초 동시에 실직했기 때문이다. 학비와 해외연수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그가 할 수 있는 건 아르바이트밖에 없었다. 오닐 씨는 “예전에는 아버지가 준 돈을 물 쓰듯 쓰면서 물건을 사는 게 너무나도 당연했다. 하지만 모두 거품이었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다”고 말했다.

오닐 씨뿐만이 아니다. 금융위기로 실직을 당하거나 급여가 줄어든, 한때 잘나가던 기업의 임원이나 중역 가정의 많은 자녀들이 비슷한 형편이다. 고급 장난감을 갖고 놀고, 명품 차를 타고 명문 사립학교에 다니던 그들이 이제는 전혀 다른 생활방식에 적응해야 하는 과제를 떠안게 됐다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 계간지 ‘FT웰스(FT Wealth)’ 가을호가 전했다.

아버지가 대형 할인점 체인을 운영하는 대니얼 펄먼 씨는 워싱턴에서 직장을 구하고 있다. 최근 명문대를 졸업한 펄먼 씨에게 얼마 전까지만 해도 구직은 큰 관심사가 아니었다. 그러나 경제위기로 아버지의 사업이 어려워지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펄먼 씨는 “돈을 많이 벌어 부자가 되고 싶지만 투자할 돈조차 없는 지금으로서는 취업만이 살길이다”라고 말했다.

쓸 수 있는 돈이 줄어드는데도 안간힘을 쓰며 예전처럼 소비 생활을 유지하려는 자녀들도 있다. 아버지가 기업 임원인 한 경영대학원생은 “경제적으로 큰 충격을 받았을 친구들이 오히려 자신의 옷차림 등 겉모양에 더 신경을 쓰고 있다”며 “‘여전히 풍족하다’는 허위의식을 유지하기 위해 빚까지 지는 친구도 있다”고 밝혔다.

물질적 풍족함이 사라지면서 이들이 겪은 정신적 충격 또한 적지 않다. 금융위기의 ‘주범’으로 몰린 리먼브러더스, 베어스턴스, AIG 등에 다닌 부모를 둔 많은 자녀들은 심지어 부모에게 혐오감마저 갖는다는 것. 패밀리컨설팅그룹 짐 그러브먼 씨는 “그런 아이들은 주위에서 보이지 않는 손가락질을 받고 있는 셈이다. 창피하고 부끄러워서 목이라도 매고 싶은 심정이 한동안 지속될 것이다”고 진단했다. 앞서 소개한 오닐 씨도 “우리 아버지가 리먼브러더스를 위해 일했다는 걸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부유층 전문 심리상담사인 데니스 피어니 씨는 “(갑자기 상황이 바뀐) 부모 스스로가 혼란과 불안에 빠지지 않고 현명하게 대응하면 자식도 변화가 두려워해야 할 대상만은 아니라는 걸 이해하게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