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잠실구장에 나타난 김성근 SK 감독의 표정은 편안했다. 하루 전인 22일 KIA와의 한국시리즈 5차전에서 심판 판정에 항의하다 선수단을 철수시켜 포스트시즌 첫 감독 퇴장이라는 불명예를 쓴 모습과는 180도 달랐다.
김 감독의 입에서 나온 말도 뜻밖이었다. 충암고 시절부터 두산의 전신인 OB, 쌍방울에 이르기까지 사제의 인연을 맺어온 적장 조범현 KIA 감독에 대한 칭찬이 이어졌다. 말을 하는 내내 제자에 대한 애틋한 감정을 드러냈다.
김 감독은 “아침에 집에서 전화가 왔더라고. 아내가 (어제 퇴장 건에 대해) 괜찮으냐고 묻더니 ‘(조)범현이도 아들이니 미워하지 말라’고 해. 우리 딸들도 다들 범현 오빠라고 부르거든”이라고 말했다.
김 감독은 플레이오프 때는 OB 감독 시절 선수로 데리고 있던 김경문 두산 감독에 대해서도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김경문 감독에 대해 “2007년 우리가 빠른 기동력을 하는 야구를 구사하자 김 감독도 ‘저런 야구를 하고 싶다’고 하더라. 그로부터 얼마 뒤 두산이 정말 그런 야구를 하고 있더라”고 회상했다. 그런 두산과 SK가 3년 연속 포스트시즌에서 맞붙으면서 역시 한국 프로야구가 한 단계 발전했다는 것이다.
박종훈 감독과 한대화 감독이 각각 LG와 한화 사령탑에 임명되면서 내년 시즌에는 김 감독이 OB에서 데리고 있던 선수 출신 감독이 4명으로 늘어난다. 청출어람(靑出於藍)이냐, 아니면 스승의 수성이냐. 내년에는 노(老)감독과 제자들의 머리싸움이 한결 흥미로워질 것 같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