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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박사, 논문조작 일부 관여… 후원금 노린 사기는 아니다”

입력 | 2009-10-27 03:00:00

■ 재판부 판결 내용

줄기세포 조작 “세계최초란 압박감에 조작 묵인”… 檢은 기소 안해
사기혐의 무죄 “황, 고의성 없어”… “과학자로서 업적 탁월” 집유
횡령혐의 유죄 “차명계좌로 8억 빼돌려”… 檢 ‘가중처벌’ 적용 안해<br>




 26일 오후 황우석 전 서울대 교수가 1심에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은 뒤 지지자들에게 둘러싸여 서울중앙지법 대법정을 나서고 있다. 지지자들은 박수를 치며 환호했으나 황 전 교수는 특별한 언급없이 법원을 빠져나갔다. 원대연 기자

26일 오후 2시 서울 서초구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417호 대법정. ‘세계 최초의 줄기세포 배양 성공’으로 한때 온 국민의 환호를 받았던 황우석 전 서울대 교수가 피고인석에 섰다. 법정을 가득 메운 300여 명의 지지자는 숨을 죽였다. 재판장인 형사합의26부 배기열 부장판사가 먼저 사기 혐의 부분에 무죄 판단을 내리자 지지자들은 박수를 치며 기뻐했다. 그러나 횡령 혐의와 난자 매매 혐의 부분에 유죄를 인정하며 집행유예를 선고할 때에는 찬물을 끼얹은 듯 숙연해졌다. 황 전 교수는 재판부가 판결문을 읽어내려 간 1시간 40분 동안 입을 꾹 다문 채 정면을 응시했다.

○ ‘세계 최초’ 압박감에 일부 검증 데이터 조작

이날 재판에서 가장 관심을 끈 부분은 황 전 교수가 직접 연구원들을 시켜 줄기세포 논문을 조작했는지였다.

재판부는 우선 “2004년 논문 발표 당시엔 황 전 교수가 난치병 환자를 위한 맞춤형 줄기세포가 수립됐다고 확신한 것 같다”고 전제했다. 연구 성과에 집착한 김선종 연구원이 줄기세포 섞어 심기 등으로 실험 데이터를 조작한 사실을 몰랐다는 것이다. 조작된 실험을 통해 얻은 줄기세포는 제대로 검증될 리 없었다. 이 과정에서 황 전 교수는 ‘세계 최초’라는 압박감에 시달렸고 2005년 논문 제출을 서두르기 위해 일부 검증 데이터 조작을 묵인하기에 이르렀다는 게 재판부의 판단이다. 재판부는 2004년과 2005년 ‘사이언스’지에 발표한 두 논문에서 조작 의혹을 산 11곳 가운데 테라토마 DNA 지문 분석 결과 등 8곳에서 조작이 이뤄진 것으로 봤다. 2004년 논문은 전체적으로 허위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렇지만 재판부는 논문 조작을 전제로 한 사기 혐의에 무죄를 선고했다. 조작된 논문이 진실한 것처럼 가장해 SK㈜와 농협으로부터 10억 원씩 모두 20억 원을 받아 가로챘다는 부분이다. 재판부는 “줄기세포의 존재를 확신했던 황 전 교수가 논문 조작 사실을 알았지만 고의로 후원사를 속일 의도는 없었다”고 결론 지었다. 후원사가 구체적인 대가를 바라지 않고 순수하게 연구비를 지원했다는 점도 고려했다.

재판부는 다만, 데이터를 조작해 논문을 발표한 행위가 논문 게재지인 사이언스에 대한 업무방해죄에 해당한다고 봤다. 그러나 검찰은 미국에서 이러한 유형의 혐의로 처벌받은 사례가 없다는 점을 들어 업무방해죄를 적용해 기소하지 않았고, 재판부도 “검찰이 기소하지도 않았는데 법원이 직권으로 논문 조작 부분을 따로 떼어내 업무방해죄로 처벌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 연구비 횡령과 난자 매매는 유죄

재판부는 황 전 교수가 정부 지원 연구비 등을 차명계좌로 받은 뒤 돈세탁을 하고 허위 세금계산서를 발행해 모두 8억3500만 원을 빼돌려 쓴 횡령 혐의에는 모두 유죄를 인정했다. 불임 시술 여성들로부터 난자를 제공받고 25차례에 걸쳐 불임 시술비 등 3800만 원 상당의 경제적 이익을 제공한 부분 역시 유죄 판단을 내렸다.

그러나 재판부는 “횡령한 돈이 연구원들의 유학자금이나 복지 등에 쓰였고, 자신의 치부나 사리사욕을 챙기는 데에는 쓰이지 않았다”고 밝혔다. 또한 과학자로서 동물복제 연구에 탁월한 업적을 남긴 점, 이미 파면처분을 받아 교수직을 상실한 점 등을 들어 실형으로 엄벌할 정도는 아니라고 판단하고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 검찰, 형량 낮은 형법 적용 ‘봐주기’ 기소?

1심 판결에서는 검찰이 황 전 교수를 기소할 때 엄격하게 법을 적용하지 않았다는 지적도 있었다. 논문 조작 부분을 업무방해죄로 기소하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8억여 원 횡령 부분도 횡령액이 5억 원 이상일 때 적용할 수 있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이 아닌 형법상 업무상 횡령죄를 적용했다는 것. 재판부는 또 조작된 논문으로 기업 후원금을 받았다는 사기 혐의 부분도 황 전 교수가 수백억 원대의 연구비를 지원받았는데 유독 SK와 농협에서 받은 후원금만 기소한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렇지만 검찰은 일부 무죄가 난 만큼 즉각 항소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반면에 황 전 교수 측 변호인은 “황 전 교수가 연구에만 전념하고 싶어 하기 때문에 항소하지 않을 것 같다”고 전했다. 하지만 검찰이 항소한다면 불이익을 받지 않기 위해 함께 항소할 가능성이 높다.


이종식 기자 bell@donga.com

최창봉 기자 cer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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