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보는 건 ‘소개팅’을 하는 것과 비슷하다. 각종 정보에 따라 영화를(이성을) 소개받지만, 막상 관람하고(소개팅을 하고) 나서 받는 실제 느낌은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기대와 영 달라 절망하기도 하고, 기대하지도 않았는데 횡재를 한 듯한 만족감이 밀려들기도 한다. 최근 본 영화 중 기대를 완전히 배반하거나(↓) 당초 기대를 훌쩍 뛰어넘어버린(↑), 딱 기대만큼만 한(←→) 영화들을 꼽아본다.》
↓ ‘나는 비와 함께 간다’
영화 제목부터 뭐가 뭔지 도무지 알 수 없다고? 절망은 이르다. 영화의 내용은 이 난해한 제목보다 100배는 더 뭐가 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린 파파야 향기’ ‘씨클로’ 같은 감성적인 명작들을 연출했던 베트남 출신 트란 안 훙 감독의 신작이지만,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대중예술가가 작정을 하고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들면 이렇게까지 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 주는 반면교사용 영화라 하겠다.
트란 안 훙 감독의 실제 아내로 ‘그린 파파야 향기’와 ‘씨클로’에서 매혹적인 모습을 보여줬던 여배우 트란 누 옌 케가 암흑가 보스(이병헌)의 운명적 여인으로 출연하지만, 기다란 발가락과 파란색 페디큐어를 빼곤 그녀가 남기는 인상은 없다.
↑ ‘호우시절’
허진호 감독의 신작 ‘호우시절’. 영어 대사의 한계를 넘어 애틋하고도 안타까운 사랑의 섬세한 감정을 전달한다. 사진 제공 판씨네마
최근 ‘외출’과 ‘행복’을 보면서 허진호 감독에게 다소 실망했지만, 이 영화를 보면 사랑과 기억, 그리고 시간이라는 화두를 허 감독처럼 섬세하게 풀어내는 감독은 역시 없음을 확인하게 된다. 이야기에서 정서를 끌어내는 대신, 정서로부터 이야기를 뽑아내는 허 감독의 특허기술이 제대로 발휘된 경우다.
“내가 처음부터 널 사랑했다는 걸 증명할 수 있다면, 지금 우리에게 달라지는 게 있을까?”(남자)
“꽃이 펴서 봄이 오는 걸까, 아니면 봄이 와서 꽃이 피는 걸까?”(여자)
단지 영화보다 훨씬 재미없는 영화 포스터와 ‘처음보다 설레고 그때보다 행복해’라는 당최 ‘필(feel)’이 안 오는 홍보문구는 불만. 그 잘 빠진 몸매를 가진 정우성이 입고 나오는 후줄근한 양복 정장도 눈에 거슬린다.
←→ ‘굿모닝 프레지던트’
소소한 대화 속에서 독특한 리듬감을 뽑아내며 공감 가는 웃음을 만드는 장진 감독의 솜씨가 탁월하지만, ‘한 방’이 부족한 느낌. 미남배우 장동건의 코미디 연기 변신도 성공적이지만 동시에 연기의 한계가 드러난 영화이기도 하다. 일탈까진 아니더라도 더 많은 감정적 경험이 ‘자연인’ 장동건에게 필요함을 느끼게 하는 영화.
이승재기자 sjd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