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속죄에 울고 희망에 또 울다

입력 | 2009-10-28 03:00:00

대전 대덕소년원, 원생 부모 초청 ‘편지 낭독의 밤’<br>




 21일 대전 대덕소년원(대산학교)에서 원생들의 부모를 초청해 ‘편지 낭독의 밤’ 행사를 열었다. 속마음을 담아 쓴 편지를 서로 읽어주며 자식과 부모는 뉘우치고 화해했다. 대전=백완종 기자

“윤재경(가명)이 어머니 되시죠?” 경찰서에서 전화가 온 건 오전 3시쯤이었다.

처음 있는 일도 아닌데 식은땀이 났다. 아들이 절도로 구치소에 있다 나온 지 두 달 정도 된 터였다. 300m 거리의 지구대까지 가는 데 1시간이 걸렸다. 당뇨를 앓고 있는 최모 씨(40)는 합병증으로 시력을 거의 잃어 밤길에는 매우 힘들어했다.

이번엔 폭행혐의였다. 9명이 1명을 때렸는데 윤 군(18)도 현장에 있었다. 다른 아이들은 합의금 50만 원에 풀려났지만 윤 군은 ‘전과’가 있어 재판에 넘겨졌다.

윤 군의 비행이 시작된 건 2004년 최 씨가 재혼하면서부터. 새 아버지와 불화를 빚더니 수시로 가출했다. 절도와 폭행에 연루되는 일이 잦아 경찰에 자주 소환됐다. 없는 형편에 합의금을 마련하느라 빚도 졌다. 여기에 윤 군은 우울증까지 보였다. 알약 50알을 먹고 혼수상태에 빠졌다가 가까스로 깨어나기도 했다.

어릴 적부터 당뇨를 앓아 온 최 씨에게 윤 군은 목숨을 걸고 낳은 아들이었다. 그 아들은 최 씨의 걸음걸이가 “왕따 같다”며 떨어져 걸었고 최 씨가 넘어지면 “쇼 하느냐”며 내려다봤다. 구치소 면회실에서 “여기 또 오면 다신 안 보겠다”고 꾸짖었을 땐 피식 웃는 아들이었다.

폭행사건 재판 이후 헤어졌던 모자는 5개월 만인 21일 다시 만났다. 대전 대덕소년원 ‘편지 낭독의 밤’ 행사장에서였다. 6개월 형을 선고 받은 윤 군은 우울증 병력 때문에 치료감호소에서 지내고 있었다. 최 씨 모자 등 소년원생과 부모 6쌍은 모닥불을 가운데 두고 둘러앉았다. 뒤에서 본 부모들의 어깨는 한결같이 ‘ㅅ’자 모양으로 처져 있었다.

28일 ‘교정의 날’에 앞서 열린 이날 행사는 소년원 측이 정신장애나 발달장애로 의료 재활시설에 수감된 70명을 위해 만든 자리였다. 보호자 전원을 초대했지만 참석한 부모는 8명이었다. 곽칠선 교무과장은 “그나마 오늘이 최다 인원”이라며 “비행에 장애까지 겹쳐 부모에게마저 버림받은 아이가 많다”고 말했다.

오랜만에 만난 어머니와 말없이 앉아있던 윤 군은 낭독시간이 되자 품에서 꼬깃꼬깃한 편지를 꺼냈다.

“엄마가 저 때문에 당뇨합병증으로 뇌경색까지 왔는데 병원에 입원해 계신 걸 보고도 전 또 가출을 했죠. 엄마가 환자복 차림으로 경찰서에 왔을 때…. 제 자신을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어요. 하지만 저 이곳에서 (대입)검정고시 공부도 해서 고등학교 졸업자격이 생겼어요. 엄마에게 해드리지 못한 보답 다 할 때까지 꼭 오래 사세요.”

뜻밖의 소식에 최 씨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2년 전 고교를 자퇴한 아들이 몰래 검정고시를 준비해 석 달 만에 합격한 사실이 믿기지 않는 듯 눈물을 훔치며 아들을 바라봤다.

답장 순서가 돌아왔지만 최 씨는 편지를 꺼내지 않았다. 시력이 거의 없어 편지를 쓸 수 없었기 때문. 최 씨는 떨리는 목소리로 즉석에서 육성편지를 썼다.

“아들아, 검정고시 합격 그 자체보다 엄마의 힘겨운 믿음에 아들이 응답해준 게, 우리 아들이 하고자 하는 뭔가를 찾은 게 너무 기뻐. 엄마가 너무 아파서 예전처럼 너의 방패가 될 수 없어. 그래도 너는 나의 영원한 ‘숙제’야. 엄마 살아 있는 동안 그 숙제 잘 끝낼 수 있도록 도와줄 거지?”

이어 폭행으로 수감 중인 최모 군(17)의 차례였다.

“저 자고 있으면 들어와서 내 옆에 누워 눈물 흘리며 자는 우리 엄마, 제가 뭐 해달라면 안 해줄 것처럼 무뚝뚝하게 말하고 나중에 몰래 해주는 아빠. 사랑은 줄 때 받고, 나중에 후회하지 말라고 하신 말 이제야 깨닫게 되네요.”

최 군의 흐느낌 속에 어머니의 답장이 이어졌다.

“(폭행)합의금 마련하느라 빚이 많이 쌓여 힘든 삶이 계속되지만 아들에게만은 예수도 되고 부처도 될 있어. 우리 아들, 사랑한다. 아까 보석박물관 다녀왔지. 너는 영원한 엄마의 보석이야. 알았어? 영원히 빛나주길 바란다.”

대전=신광영 기자 neo@donga.com
소년원생과 부모들 편지로 전하는 마음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