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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순일의 ‘내사랑 스포츠’]정말 대단했던 한류 스포츠 스타 신동파와 박주봉

입력 | 2009-10-28 10:21:06

신동파(왼쪽) 박주봉. 동아일보 자료사진


수도 중심지의 노른자위 땅. 그 위에 지어진 32개 면의 코트가 있는 체육관. 그리고 관련 용품 쇼핑몰과 호텔급 객실이 있는 숙소.

말레이시아가 한국으로부터 단 한사람을 초청하기 위해 내건 조건은 정말 파격적이었다.
말레이시아의 수도 콸라룸푸르 중심지에 세계 배드민턴 선수들의 전지 훈련장 겸 교육장을 천문학적인 돈을 들여 조성한 것은 오로지 한국의 박주봉(45·현 일본배드민턴국가대표팀 감독)을 초청해 이곳을 운영하는 것을 전제로 한 것이었다.

박주봉 감독은 1999년부터 4년 간 말레이시아 배드민턴대표팀 코치를 맡아 이런 기대에 부응했다.

요즘 연예인들이 이끄는 한류(韓流) 바람에 대한 평가가 높지만 스포츠 계에서는 이보다 훨씬 앞서 한류 열풍을 일으킨 스타플레이어들이 있다.

'셔틀콕의 황제' 박주봉 감독. 그보다 20년 여 앞서 필리핀에서 '농구의 신'으로 추앙받은 신동파(65) 현 대한농구협회 부회장이 바로 그 주인공들이다.
1970년대 필리핀의 수도 마닐라에는 '신동파 양복점' '신동파 빵집' 등 '신동파'라는 이름을 붙인 상점들이 즐비할 정도로 신동파 부회장은 필리핀 사람들의 우상이었다.
당시 필리핀농구협회에서 한국농구대표팀을 초청할 때 내거는 조건은 딱 한 가지. '신동파가 끼어 있는 팀이어야 한다'는 것.

1970년 필리핀농구협회의 초청으로 신동파 부회장이 소속된 기업은행이 한국대표팀 자격으로 마닐라 공항에 내렸을 때 환영인파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당시 필리핀 최고의 인기 배우 부부는 자기 집 하나를 '동파 룸'이라고 이름 붙이고 신 부회장만 이곳에 묵에 할 정도였다.
신 부회장이 이처럼 인기를 끌게 된 계기는 1969년 태국 방콕에서 열린 ABC농구선수권 대회였다. 당시 필리핀은 아시아 농구 최강이라 자부하고 있었는데 결승에서 만난 한국팀이 신 부회장의 무려 50점을 넣는 활약에 힘입어 95-86으로 승리한 것.

그는 1970년 유고에서 열린 세계농구선수권대회에서도 득점왕에 올라 세계무대에서 각광을 받았다. 이탈리아에서 스카우트 손길이 뻗쳤고 당시에는 미국프로농구(NBA)와의 교류가 거의 없어 이뤄지지 못했지만 NBA에 진출했어도 주전으로 활약할 충분한 기량을 갖췄던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배드민턴 국제대회에서 72회나 정상에 올라 최다 우승 기록으로 기네스북에 올라 있는 '셔틀콕의 황제' 박주봉 감독.

그는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태국 등 동남아는 물론 영국 덴마크 스웨덴 등 유럽에서도 한류를 일으켰다.
1990년대 동남아 지역에서는 '주봉 버거'라는 햄버거가 대유행을 한 적이 있는데 바로 박 감독의 이름을 딴 것이었다. 또한 배드민턴 종주국 영국에서는 국가대표팀을 지도했고 덴마크 스웨덴 등에서는 끊임없이 강사로 초청받았다.

고교 1학년 때 국가대표가 된 뒤 윔블던배드민턴 3연패, 아시아경기대회 3관왕, 바르셀로나올림픽 금메달 등 배드민턴에서 전무후무한 대 기록을 세운 그는 영국대표팀과 말레이시아대표팀 코치를 거쳐 현재 일본대표팀 감독으로 재직 중이다.

1970년대의 신동파, 1990년대의 박주봉. 그렇다면 2010년대 한류 열풍을 일으킬 스포츠 스타는 누가 될까.

권순일 | 동아일보 스포츠사업팀장 stt7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