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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산업 뛰어든 中企, 규제 때문에 녹초될라

입력 | 2009-10-29 03:00:00

‘친환경 인증’ 받으려 팔지도 못할 제품 개발에 거액 투자
정부지원금 대폭 줄고, 눈덩이 원가부담 고스란히 떠맡아




‘팔지도 않을 제품 개발에 수천만 원을 투자하는 기업이 있다면?’

발광다이오드(LED) 조명을 생산하는 중소기업 A사는 판매용이 아닌 ‘인증용’ 제품 개발에만 최근 3000만 원을 썼다. 이 제품은 60W짜리 백열등 대체용 LED 전구로 지식경제부 산하 기술표준원의 ‘한국산업규격(KS) 인증’과 에너지관리공단의 ‘고효율 기자재 인증’ 등을 동시에 받기 위해 개발됐다. 각종 인증을 모두 받을 수 있도록 비실용적인 부분까지 추가하다 보니 판매용 제품보다 원가가 50% 이상 높아졌다.

이 회사가 이른바 ‘홍보용’ 제품 개발에 수천만 원을 쓴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공공기관에 납품할 때 정부에서 발급하는 인증을 여러 개 받아야 우선구매 대상으로 선정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반면 유럽이나 미국은 각각 CE와 UL 인증만 받으면 판매에 아무런 지장이 없다. 기술표준원에 따르면 LED 제품 한 개를 인증 받는 데만 시험 기자재 구입비와 수수료까지 최소 1000만 원이 넘게 들어간다. A사 대표는 “각종 인증을 실효성 있는 단일 인증체계로 통합해 기업의 부담을 덜어줬으면 한다”고 지적했다.

최근 정부의 ‘저탄소 녹색성장’ 정책에 힘입어 LED와 태양광, 풍력발전 등을 중심으로 녹색산업에 뛰어드는 중소기업이 급증하고 있다. 하지만 오락가락하는 정부의 녹색정책과 친환경 기준을 맞추기 위한 각종 비용부담을 중소기업으로 떠넘기는 대기업들의 행태 때문에 고통을 호소하는 녹색 중소기업이 적지 않다.

기업은행 경제연구소가 녹색산업 중소기업 1200개를 대상으로 정부의 녹색성장 정책이 낳은 부정적 영향을 조사한 결과 조사 대상기업의 절반(50.0%)이 ‘규제 강화’를 꼽았다. 이어 ‘원가 상승’(16.7%) ‘과당경쟁’(16.7%) ‘대기업 시장장악’(16.6%) 등의 순으로 응답했다. 원가 상승이 결국 규제 강화에 따른 결과임을 감안하면 전체의 66.7%가 녹색 규제로 인한 원가부담을 느끼고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기업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늑장 인증정책으로 선의의 피해자가 나오기도 한다. LED 조명업체인 B사는 형광등 대체형 LED 조명을 컨버터 내장형으로 개발하고 양산까지 마쳤지만 최근 정부가 이에 대한 제품 인증을 거부해 속만 끓이고 있다. 당초 정부는 올해 7월경 형광등 대체형 LED를 KS 인증 항목에 추가하겠다고 밝혔지만, 자체 실험결과 외장형 컨버터에 비해 안전성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며 이를 전면 보류한 것. B사 대표는 “정부의 LED 인증 기준이 조기에 확정되지 않아 적지 않은 손해를 입게 됐다”고 말했다.

녹색 중기에 대한 정부지원이 오락가락하면서 피해를 본 업체도 있다. 충북에서 태양광발전 사업을 하고 있는 C사는 정부가 태양광 발전 지원자금을 대폭 줄이기로 하면서 최근 심각한 재정난을 겪고 있다. 태양광 진출 기업이 급증한 데다 정부 자금이 일본의 관련 부품업체로 흘러들어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자 정부가 지원 규모를 줄이기로 결정한 것이다.

수출 시 각국이 요구하는 친환경 기준도 중소기업들에는 상당한 부담이 된다. 반도체 업체인 D사는 2년의 품질검증을 거쳐 8개월간 ‘그린 파트너’ 인증까지 거친 뒤에야 일본 소니에 휴대전화용 자동초점(AF) 칩을 작년 7월 납품할 수 있었다. 그린 파트너는 유럽의 친환경 규제에 맞춰 카드뮴이나 수은, 납, 크롬 등 유해물질 기준치를 전 제조과정에서 철저히 준수하는 협력업체에 수여하는 소니의 친환경 인증서. 품질검증을 통과해도 그린 파트너 인증을 추가로 받지 못하면 소니에 납품할 수 없다. D사는 그린 파트너 인증을 받기 위해 서류와 샘플 제품을 보내는 한편 소니 본사에서 파견된 직원들로부터 직접 실사(實査)까지 받았다.

협력업체에 대한 친환경 인증 요구는 삼성전기(S-파트너)와 LG전자(친환경 인증제) 등 국내 대기업들도 하고 있다. D사 대표는 “대기업들이 친환경 기준을 강화하는 것은 세계적인 추세로 당연한 것”이라며 “하지만 일부 국내 대기업이 늘어나는 원가만큼 납품단가를 올려주지 않는 등 친환경 부담을 중소기업에 전가하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