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인 학도병과 日여인의 슬픈 사랑광폭한 전쟁의 아픔에 객석 곳곳 눈물
동진(오른쪽·민영기)이 전장으로 떠나기 전 미와(하쓰네 마요)와 서로 마음을 확인한 뒤 사랑의 이중창을 부르고 있다. 28일 일본 도쿄 기노쿠니야 홀 무대에 펼쳐진 이들의 안타까운 사랑에 관객들의 눈가가 촉촉이 젖어들었다. 사진 제공 도쿄 긴가도 극단
정장 차림의 노부부, 여고생, 손을 꼭 잡은 연인 등 50여 명이 줄지어 서있었다. 27일 오후 5시 반 일본 도쿄 신주쿠 기노쿠니야 홀 앞. 일본군에 강제 징용됐다가 비극적인 일생을 마친 한 조선인의 이야기를 다룬 한일합작뮤지컬 ‘침묵의 소리(沈默の聲)’가 막을 올리기 1시간 반 전이었다. 미오카 우키요 씨(55)는 “전쟁과 한일 간의 아픈 역사를 다뤘다는 공연 기사를 신문에서 보고 찾아왔다”고 말했다.
서울시뮤지컬단과 일본 긴가도 극단이 공동 제작하고 동아일보사와 세종문화회관이 공동 주최한 ‘침묵의 소리’는 9월 보름간 한국 공연을 마친 뒤 일본으로 건너가 이달 11일부터 일본 우베, 오사카, 나고야 각 1회, 도쿄 10회 등 13차례의 공연을 28일 마쳤다. 모두 7000여 명이 관람했고 1000석 규모의 지방 공연장과 400석의 도쿄 극장이 모두 성황을 이뤘다.
이 작품은 올해 일본 문화청 예술제 참가공연으로 뽑혔다. 500여 편의 지원작 가운데 30편이 선정됐는데 이 중 뮤지컬은 3편뿐이었다. 선정작을 심사해 12월에 시상식도 연다. 도쿄 공연을 본 심사위원들은 “한일 문제를 양국이 협력해 무대에 올렸다는 시도 자체에 커다란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동진과 미와가 서로를 향한 애틋한 마음을 노래하는 ‘영원한 소망’ 등에서 박수와 환호가 터져 나왔다. 동진이 아비규환의 전쟁터에서 연인을 그리워할 때는 객석 여기저기서 흐느낌이 들렸다.
가와무라 다케오 전 관방장관도 11일 일본 첫 공연을 관람하기 위해 우베 시 와타나베옹(翁) 기념회관을 찾았다. 가와무라 전 장관은 “아시아판 ‘로미오와 줄리엣’을 연상시킨다”며 “역사적 사실을 의도적으로 부각하기보다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게 만든 작품이었다”고 평가했다. 아사히신문은 ‘조선인 일본병 비극의 기억’이라는 제목의 20일 기사에서 “한국을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라고 전했다. 요미우리신문은 9월 30일과 10월 14, 15일 세 차례에 걸쳐 일본 연출자 시나가와 요시마사 씨 인터뷰와 공연 안내 기사를 실었다.
노인 김동진을 연기한 가나오 데쓰오 씨(59)는 “뮤지컬을 함께하면서 가까운 두 나라가 역사 인식이나 문화의 차이를 알아가는 과정이 의미 깊었다”고 말했다. 관객 후쿠시마 이스코 씨(32)는 “한일 간의 역사를 잘 모르지만 이 작품을 통해 두 나라의 아픔을 이해하게 됐다”고 말했다.
도쿄=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