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세종체임버홀 독주회 라이케르트 서울大교수
올 3월 서울대 교수로 임용된 피아니스트 아비람 라이케르트(앉아 있는 사람)가 교정에서 만난 학생들과 함께 슈베르트의 즉흥곡을 생각해보는 시간을 ‘즉흥적으로’ 가졌다. 학생들은 그에 대해 “음악을 진정 사랑하게 만드는 열정적인 스승”이라고 평했다. 김재명 기자
“오랜만입니다.”
우리말 발음이 또렷했다. ‘한국어를 배우느냐’고 물었더니 “수업하는 데 필요한 말부터 우선 익혔다”고 했다. ‘점점’ ‘조금 더’ ‘반대로’….
“다음 학기엔 시간을 내서 한국어 회화 강의를 들을 겁니다. 한두 해가 아니고 ‘오래’ 있을 거니까요.”
두 가지나 되는 한국과의 큰 인연이 예사롭지 않다. 동아국제음악콩쿠르가 그를 이 자리로 불러온 것일까. “저를 교수로 뽑아주신 분들에게 동아국제음악콩쿠르 우승 경력은 틀림없이 좋은 인상을 주었습니다. 그때 연주 모습을 기억하는 분도 많았으니까요. 그렇지만 피아노과 교수로서 저는 ‘최고의 학생’이 있는 곳을 찾아온 겁니다. 오늘날 어디에 최고가 있는지는 누구나 다 압니다. 바로 한국이죠.”
13년 전 우승 직후 인터뷰에서 그는 가장 좋아하는 작곡가로 슈베르트를 꼽았다. 결선 연주곡으로는 프로코피예프의 협주곡 3번을 선택했다. 이번 프로그램도 슈베르트와 프로코피예프의 후기 소나타다. “긴 시간이죠. 많은 작곡가를 섭렵했어요. 하지만 옛 사랑은 변하지 않죠.(웃음)”
후기 소나타란 대체로 깊고 무거운 감정을 표현하기 마련이지만 두 작품은 희망적인 느낌으로 끝난다. 끝없을 듯 이어지는 긴 멜로디도 비슷하다. B플랫장조라는 점도 공통된다. “한 세기가 차이나는 시대의 작품이지만 놀랄 정도로 유사하죠. 제가 이 먼 나라에 와서 제 학생들에게서 저와 같은 점을 찾아내는 것처럼 놀라워요”라며 그는 정말 놀란 듯 눈을 치떴다.
“한국에선 가르치는 일과 연주 활동을 병행하기 힘들어하는 사람이 많은데…”라고 떠보았다. 그는 아직까지는 괜찮다고 했다. 무엇보다도 가르치는 일이 자신에게 꼭 필요하다고 했다. “가르치는 과정에서 연주가 변해요. 깊어지고 편안해지죠. 학생들에게 곡에 대해 설명한다는 건 나 자신에게 설명하는 것이기도 하니까요.”
그의 가족은 이국 체류를 즐길까. 가족이 있기는 한 걸까. “저요? 갓난아이 아빠예요. 넉 달 전에 ‘파도’라는 뜻의 딸 갈리를 낳았죠.” 서울은 기대보다 훨씬 문화적 환경이 풍요해서 부인이 갈리를 자기에게 맡기고 저녁에 음악회를 보러 가기도 한다며 그는 웃었다.
음대 로비를 나서다 그가 가르치는 학생들을 만났다. 만난 지 7개월 된 새 선생님을 그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순수하고 열정적이세요. 레슨을 받다 보면 저절로 곡을 사랑하게 만들어 주세요.” 김혜영 씨(2학년)의 말에 석사과정 김성현 씨가 “3, 4학년에게는 다르다”며 이의를 제기했다. “곡에 대해서는 굉장히 엄격하세요. 작품의 내면을 진지하게 찾아내지 못했다고 생각할 때는 따끔하게 지적하시죠.”
헤어지기 직전 그는 ‘기사 속에 감사의 말을 꼭 넣어 달라’고 부탁했다. “제가 임용될 당시 문익주 교수님이 비자문제 등에 도움을 많이 주셨어요. 음대의 모든 분도 열정적으로 도와주셨고….” 마치 한국인 음악가를 만난 듯했다. 내국인의 부탁이라면 ‘다른 쓸 말이 많다’며 무시했을 것이다. 그러나 왠지 그의 말은 거절하기 힘들었다. 3만 원. 02-780-5054
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라이케르트 교수는:
▽이스라엘 텔아비브 루빈 뮤직아카데미에서 아리 바르디를 사사 ▽1995년 프랑스 에피날 국제콩쿠르 대상 ▽1996년 제1회 동아국제콩쿠르·브레멘 국제콩쿠르 우승 ▽1997년 반 클라이번 국제콩쿠르 동메달 ▽2001∼2008 미국 미시간 그랜드밸리주립대 피아노과 부교수 ▽이스라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예루살렘 방송 교항악단, 도쿄 심포니 오케스트라, 시카고 신포니에타 등과 협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