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인 한 명이 동부전선 철책을 끊고 월북한 사건은 우리 군(軍)의 경계태세가 어떤 지경에 와있는지 한눈에 드러냈다. 전방관측소(GOP)의 3중 철조망을 뚫고 군사분계선(MDL)을 넘어갔는데도, 군은 북한의 조선중앙방송을 듣고서야 뒤늦게 알았다. 북은 “강동림 씨가 전방 근무 중 공화국 북반부를 동경해 의거(월북)하려 했지만 기회를 얻지 못했다가 이번에 염원이 실현돼 기쁨을 금치 못하고 있다”며 우리 군의 허술한 경계태세를 조롱했다.
구멍 하나가 큰 둑을 무너뜨리고, 약한 고리 하나가 튼튼한 사슬을 끊어놓듯이 일선 초병의 근무 태만이 국가 안보(安保)를 결정적 위험에 빠뜨릴 수도 있다. 초병의 근무기강을 보면 군과 정부의 안보태세를 짐작할 수 있다. 1968년 1월 휴전선 철책을 뚫고 내려온 북 특수부대원 31명의 1·21 청와대 습격사건과 같은 해 10월 무장공비 120명의 울진 삼척지구 해안선 침투 및 양민 23명 학살사건도 대표적인 경계 실패 사례다. 이번 사건 역시 ‘작전에 실패한 지휘관은 용서할 수 있어도, 경계에 실패한 지휘관은 용서할 수 없다’는 교훈을 거듭 일깨워주고 있다. 22사단이 월북자가 군복무했던 부대여서 철책을 쉽게 뚫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군 당국의 설명은 구차한 변명일 뿐이다. 구멍이 뚫릴 때마다 변명을 듣기도 지겹고 화난다.
GOP의 경계활동에 첨단 장비나 고도의 기술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야시경(夜視鏡) 같은 장비를 갖고 근무수칙만 성실하게 지키면 이번과 같은 사건은 막을 수 있다. 군이 북의 황강댐 방류로 임진강 수위가 높아진 것을 보고도 제때 알리지 않아 민간인 6명이 익사하고, 북 주민 11명이 탄 귀순 선박의 동해안 접근을 레이더로 포착하고도 확인에 늑장을 부린 게 불과 얼마 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