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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순일의 ‘내사랑 스포츠’]‘슈퍼 너구리’ 장명부

입력 | 2009-10-30 12:30:14


그는 한 시즌에서만 427과 3분의 1이닝을 던졌다.

60경기에 등판해 30승 16패 6세이브를 기록했다

1983년 8월 한 달 동안에는 나흘 연속 등판해 완투승→2이닝 마무리→2와 3분의 1이닝 마무리→완투승이라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프로야구 삼미 슈퍼스타즈에서 활약했던 재일동포 투수 장명부.
그는 가히 슈퍼맨이라고 할만했다.

올 시즌 프로야구 기록과 비교해보면 그의 괴력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알 수 있다.

올 시즌 최다 투구 이닝은 KIA의 외국인 투수 아킬리노 로페즈가 기록한 190과 3분의1 이닝.
최다승은 로페즈, 조정훈(롯데), 윤성환(삼성)이 14승으로 공동 1위. 최다 완투승은 류현진(한화)과 로페즈가 4승으로 공동 1위. 최다 완봉승은 송승준(롯데)의 3승이다.

이와 비교해 장명부는 1983년 60경기에 등판했고 44경기에 선발로 나서 완투 26승, 완봉 5승, 선발 28승, 연속 경기 완투 8승을 올리며 한국 프로야구 사상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다.

까무잡잡한 얼굴에 별이 그려진 삼미 슈퍼스타즈 모자를 푹 눌러 쓰고 마운드에서 여유 있는 태도로 타자를 요리하던 장명부. 그는 사이드 암과 스리 쿼터형의 투구 스타일을 변칙적으로 사용하며 145㎞의 빠른 직구와 낙차 큰 커브, 능수능란한 완급 조절로 경기장을 지배했다.

그래서 그에게 붙여진 별명은 '슈퍼 너구리'.

사실 이런 그의 초인적인 기록은 한국 프로야구가 출범 2년 밖에 안 된 초창기 시절이니까 가능했지 지금처럼 한국 야구의 수준이 세계 정상급으로 올라 있는 상태에서는 불가능한 것이라는 지적이 있다.

하지만 아무리 과거의 일이라고는 해도 장명부가 세운 기록은 무쇠 어깨를 가진 '괴물'이 아니면 이룰 수 없는 업적이었다.

팬들은 상상을 초월하는 능력을 보여준 이런 '괴물'에게 열광한다.

장명부는 1968년 일본 프로야구 요미우리의 연습생으로 입단해 1973년 난카이, 1977년 히로시마 구단에서 선수 생활을 했고 은퇴를 앞두고 있던 1982년 삼미 구단의 스카우트 제의를 받고 한국으로 건너 왔다. 그가 받은 돈은 1억 2000만원. 당시 국내 최고 연봉선수인 OB의 박철순이 2400만원을 받고 있었으니 엄청난 거액이었다.

장명부는 1983년 시즌 이후 구단과의 보너스 문제로 밀고 당기기를 하다 불만을 품게 됐고 1984년에는 거의 태업 수준의 플레이를 펼치며 13승 20패 7세이브로 시즌을 마감했고 1986년 빙그레에서 선수 생활을 끝냈다.

이후 그의 인생은 쇠락했다. 서울의 고등학교를 찾아다니며 투수를 지도했고 삼성과 롯데 투수 코치 등을 하다 1991년 5월 일본으로 돌아간 그는 택시 운전 등 힘겨운 생활을 하다 2005년 일본 와카야마현 미나베 마을에서 자신이 운영하던 마작하우스 소파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역대 최다 관중인 634만7547명(올스타전, 포스트시즌 포함)을 기록하며 성공을 거둔 2009 프로야구.

'불사조 투수' 박철순의 22연승, 백인천의 4할 타율(0.412)과 함께 한국프로야구 불멸의 3대 기록으로 남아 있는 한 시즌 30승의 '슈퍼 너구리' 장명부. 그가 생각난 것은 프로야구의 대 성공 속에 이런 '괴물'이 한 번 더 등장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 때문이다.

권순일 | 동아일보 스포츠사업팀장 stt7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