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호학-철학-문학이론-비평문 등 전집가짜전쟁-매스컴과 미학 등 국내 첫 소개예리한 논증과 사유, 유머의 진수 보여줘
사진 제공 열린책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장미의 이름’ ‘푸코의 진자’ 등으로 잘 알려진 움베르토 에코. 그는 소설가이기 이전에 기호학, 철학, 문화비평 등 다방면에서 활동한 학자다. 48세에 첫 소설 ‘장미의 이름’을 발표해 세계적인 명성을 얻기 전까지 그는 대학교수로 토리노대, 볼로냐대 등에 재직하며 ‘중세 미학의 발전’ ‘이야기 속의 독자’ 등 중세미학, 기호학과 언어학 전반에 걸쳐 다양한 저술활동을 해왔다.
‘움베르토 에코 마니아 컬렉션’은 이런 에코의 저작들을 모아 총 25권으로 출간한 전집이다. 문학작품과 최근 출간 중인 미학 시리즈 ‘미의 역사’ ‘추의 역사’ 등은 제외됐으며 기호학, 철학, 문학이론과 에세이, 칼럼, 비평문이 주를 이룬다.
‘가짜 전쟁’은 일간지, 월간 평론지에 실린 기호학 관련 에세이와 논문 모음집이다. 일상생활과 정치적 사건, 매스미디어 언어, 여행에 대한 저자의 발상과 통찰 등을 만날 수 있다. 스포츠에 대한 그의 독특한 단상도 흥미롭다. ‘스포츠에 대한 수다’ ‘월드컵과 허영’ 등에서 에코는 스포츠 게임을 부정적으로 통찰한다. 우선 그는 “세상에는 학생 운동, 도시 봉기, 지구촌 시위와 같은 것들이 결코 할 수 없는 일이 있는데 이는 다름 아니라 일요일에 경기장으로 몰려가 그곳을 인파로 가득 채우는 것”이라고 말한다. 스포츠 경기장에 몰려가 흥분하며 때론 폭력사태까지 벌이는 관중에 대해 에코는 “내 건강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고 다만 다른 사람들의 건강함을 즐기는 유의 관음증을 지닌 사람들”이라고 간주한다.
‘언어와 광기’는 역사적인 사건의 주인공들이 잘못된 믿음을 가지고 뭔가를 탐색하지 않다가 의도하지 않게 해낸 뜻밖의 발견들에 대한 이야기다. ‘오스트랄 대륙의 언어’란 글에서 그는 17세기까지 계속됐던 선험적인 완벽한 언어에 대한 탐색을 분석한다. 에코는 특히 가브리엘 드 푸아니의 공상소설 ‘오스트랄 대륙’에서 이뤄진 실험에 주목한다. 유토피아적인 공간으로 설정된 이 대륙의 사람들은 언어 역시 이상적인 언어를 쓰는 것으로 나온다. 저자는 이 언어를 분석해 그것이 불완전함을 보여준 뒤 “선험적인 철학언어라는 유토피아 찾기의 실패는 소설 세계에 몇 개의 흥미 있는 실험들을 던져 놓았다”고 말한다. 그들이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결국 우리가 쓰는 불완전한 언어들로 어떻게 시적 가치, 또는 공상적인 힘을 부여받은 글을 쓸 수 있는지를 보여줬다는 것이다.
방대한 백과사전식 지식을 기반으로 예리한 논증과 사유, 엉뚱한 발상과 유머 등을 보여주는 에코의 저작들을 두루 살펴볼 수 있다. 출판사는 앞으로 현지에서 출간된 에코의 근작 ‘책을 버려?’(가제)를 비롯한 다른 저작들도 추가해 나갈 예정이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