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화요일에 어느 기업 임직원을 대상으로 예술과 창의성이라는 주제의 조찬 강의를 진행했다. 맨 앞자리에 앉은 회장이 강의 도중에 무언가를 종이에 열심히 적는 모습이 나의 눈길을 끌었다. 강의가 끝날 즈음에는 그가 메모하는 속도가 더욱 빨라졌다. 회장이 무엇을 적고 있었는지에 대한 궁금증은 강의가 끝나는 순간에 풀렸다.
강의를 마무리 짓고 자리에 앉자 뜻밖에도 회장은 단상으로 나가 강의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6가지 창의적인 발상을 업무에 적용하는 방법을 임직원에게 제시했다. 아침 일찍부터 미술 강의를 진지하게 듣던 회장의 태도도 인상적이었지만 1시간 반이라는 짧은 시간에 예술작품에서 창의적인 아이템을 끌어내어 업무에 연결시키는 순발력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회장은 창조경영인의 모범 사례로 언론매체에 종종 소개되곤 했는데 과연 그럴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경험한 신선한 충격은 기업인이 창조경영에 얼마나 많은 관심을 기울이는지에 대해 이해하는 좋은 계기가 됐다. 창의성이 시대의 화두가 되면서 예술작품을 감상하는 일이 창의적인 발상을 하는 데 어떤 도움이 되는지 질문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예술작품을 감상하면 창의성 계발에 도움이 된다. 예술작품이 창조성의 교재가 되는 근거를 크게 다음의 3가지로 요약할 수 있겠다.
첫째, 차별화 및 독창성이다. 미술계에는 무한경쟁 체제라고 표현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예술가의 수가 많은 편이다.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예술가를 꿈꿀 수 있는 데다 예술가가 되기 위한 자격증이 필요 없을뿐더러 학력도 요구하지 않아서다. 예비 작가의 수도 매년 늘어나는 실정이다. 미술 관련학부 졸업생의 수가 한 해 수천 명에 이르니 말이다.
예술가 지망생이 미술계로 들어오는 길은 넓은 반면 미술전문가의 인정을 받고 대중이 선호하는 예술가가 되는 길은 비좁고 험난하다. 오죽하면 예술가로 성공하기란 로또복권에 당첨되는 것보다 더 어렵다는 농담이 진담처럼 미술계에 회자될까? 이처럼 치열한 경쟁 속에서 예술가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차별화 전략을 구사하지 않을 수 없다. 차별화란 독창적인 양식, 즉 자신만의 고유한 스타일을 개발하는 일을 말한다. 미술사에 등재된 대다수의 예술가는 독창적인 스타일을 창안하면서 미술계의 주목을 받고 거장의 자리에 올랐다. 다른 예술가와 차별화된 고유한 스타일을 개발하기 위해 탐구심을 불태우는 동안 창의성은 싹이 트고 자라서 꽃을 피우게 된다.
둘째, 혁신과 실험정신이다. 예술가는 자유라는 DNA를 몸에 지니고 태어난 사람이다. 그런 만큼 규제 억압 강요 획일화 같은 단어를 무척이나 싫어한다. 대다수의 사람은 스스로 테두리를 만들고 윤곽선 안에서 살아가려고 애쓰는 반면 예술가는 경계를 넘나들고 일상의 울타리를 깨부수고 금기에 도전한다. 새로움에 대한 호기심과 모험심, 도전의식이 혁신적이고 실험적인 작품을 제작하는 토양이 된다. 이는 미국 추상표현주의 화가 윌리엄 드 쿠닝이 “독립성과 새로움, 독창성을 바라는 모든 예술가의 욕망은 실은 혁신 그 자체를 바라는 욕망이다. 만일 예술가가 모든 예술을 바꾸고 싶은 욕망을 느끼지 않는다면 그는 자신에게 영감을 불어넣었던 대가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자신만의 그림을 그릴 수 없게 된다. 혁신은 예술가에게 진보가 아닌 존재 그 자체를 뜻한다”라고 말했던 데서도 선명하게 드러난다.
셋째, 자기만족과 성취감이다. 대다수의 일반인은 자신이 무엇을 가장 좋아하는지 모르는 반면 예술가는 자신이 무엇을 열망하는지 잘 안다. 그리고 그 갈망하는 일을 하기 위해 예술가의 길을 선택한다. 따라서 예술가를 가장 기쁘게 하는 점은 내적인 보상, 즉 자기만족과 성취감이다. 예술가는 이 두 가지를 최상의 가치로 손꼽기에 창작 활동에 인생을 다걸기(올인)한다. 상업성을 본능적으로 경계하는 것도 내적인 가치보다 외적인 보상을 추구하도록 유혹하기 때문이다. 예술가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일을 하는 동안 열정과 에너지가 샘솟게 되고 그 결과 창의적인 작품을 생산하게 된다.
주말에 미술관 나들이 어떨까
독자들이 이번 주말 나들이 코스로 가까운 미술관을 선택한다면 창의성의 원천인 예술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소중한 체험을 할 것이다. 그런 한편 예술작품이 왜 창의성의 교과서인지에 대해서도 깨닫는 기회를 갖게 될 것이다. 예술성이 뛰어난 작품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이며 자신의 가치를 발견하고 인정하는 사람은 창의적인 인간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가르쳐준다. 예술작품을 감상하면서 자신 안에 숨겨진 창의성과 만나는 기쁨을 맛보기를 바란다.
이명옥 사비나미술관 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