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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속의 근대 100景]한여름 바캉스

입력 | 2009-11-03 03:00:00

“따님 유혹하는 마수”
피서지 성추행 경고
서민들 한강변 몰려




《‘따님을 유혹하는 마수가 피서지에서 이리저리 활약합니다. 보호자 없으면 하로(하루)길이라도 보내지 마시오.―지금의 더위는 실로 심합니다. 학교 휴가를 기다렸다가 산으로 바다로 뛰여가는 여학생들이 만슴니다. 마음껏 뛰고 놀고 교실에서 고달피든 사지를 펴고 심신의 휴양을 읻게 하는 것은 올타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보호자 없이 마음대로 놀러 내보내는 거슨 극히 주의하서야 합니다.’ ―동아일보 1934년 7월 17일자》

 1930년대 해변으로 바캉스를 떠난 멋쟁이들이 선글라스 맵시를 뽐내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대한제국 때 사회구조의 변화와 철도의 보급, 신문물의 유입으로 새로운 피서 문화가 나타났다. 이후 20세기 초에 들어와 서민들도 계절과 유행에 따라 바캉스에 적극 나서기 시작했다.

경성의 서민들은 전차 삯 10전이면 갈 수 있는 한강철교 밑으로 몰려들었다. “이름만 들어도 서늘하고 시원한 생각이 절로 나는 곳은 한강철교이다.…보트를 1시간 동안 타는 데 40, 50전가량이면 탈 수가 있다니까 돈 없는 학생들이라도 보트를 부릴 줄 아는 동무를 데리고 5인이 합자(合資)를 하여 배를 빌어서 노는 일도 재밌는 놀이이다.”(1921년 8월 22일 동아일보)

1913년 일제는 명승지로 꼽히는 미야기 현 마쓰시마(松島)와 풍광이 비슷한 부산 거북섬에 송도해수욕장을 만들었다. 1920년대엔 여관과 해수탕, 휴게소, 탈의시설을 갖춰나갔다. 여름엔 매일 남포동 도선장에서 해수욕장까지 1시간마다 발동선을 운항했고 연간 6만 명의 피서객이 찾았다. 부산 광안리와 해운대, 함남 원산 송도원, 인천 월미도, 전북 변산에도 해수욕장이 만들어졌다. 1927년 7월 20일 동아일보에는 ‘해수욕하러 갈 때의 주의’라는 제목으로 만성질환자들은 수영하지 말 것, 물결이 고요하고 청결한 바다를 선택할 것, 과도하게 수영하지 말 것, 위장병과 일사병을 주의할 것 등을 알리는 기사가 등장했다.

여성과 학생 피서객이 늘어나면서 성추행이나 칼부림 등 사고도 일어났다. ‘신성한 산중에도 바다에도 불량배의 독수가 잇다-자녀를 지도자 없이 피서지에 보내는 부모들의 주의할 일’(1932년 7월 10일), ‘여름피서지에 불량배가 활약’(1935년 7월 18일) 등의 기사가 실렸다. ‘피서지에서 돌아온 자녀에 대한 주의-그 행동이 이상하지 안흔가’(1935년 8월 28일) 기사에서는 “우리 아이는 얌전하니까 하고 안심하지 말고 이상한 구석이 있으면 온 가족이 모이는 끼니 때 피서지 얘기를 화제로 꺼내보라”고 조언했다.

6·25전쟁을 겪은 뒤 혼란과 빈곤의 시대에 바캉스 문화는 별다른 진전이 없었다. 1970년대 이후 급속한 경제 성장과 함께 찾아온 생활의 여유는 한국인들이 여가에 대해 되돌아보게 했으며 1989년 해외여행 자유화와 2004년 주5일 근무제 도입도 개인의 취향에 따른 다양한 여가문화를 촉진했다. 국토해양부에 따르면 올해 하계 휴가철(7월 18일∼8월 16일)에 전국의 지역 간 이동인원은 9366만 명, 1일 평균 312만 명이었으며 동해안으로 떠난 사람이 23.9%로 가장 많았다.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