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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건축을 말한다]승효상의 공주 ‘전통불교문화원’

입력 | 2009-11-04 03:00:00

‘절집은 이래야…’ 관습 덜어내고 싶었다

‘화려한 단청과 기와’ 껍질보다 불교의 본질인 ‘비움’ 정신 추구
나무 많이 사용 자연회귀 강조




 충남 공주시 사곡면의 ‘전통불교문화원’은 덜어냄과 비움을 추구하는 승효상의 건축철학과 불교정신을 함께 담은 건축물이다. 장식 없는 검정 목재와 노출 콘크리트 외피에서 눈을 돌릴 때 비로소 편안하게 배치된 공간의 흐름을 느낄 수 있다. 사진 제공 이로재

빈자(貧者)의 미학.

승효상 이로재 대표(57·사진)는 자기만의 담론을 이룬 건축가다. 한국의 1세대 현대건축가인 고(故) 김수근의 공간연구소에서 15년을 보낸 뒤 ‘이슬을 밟는 집(履露齋)’이라는 현판을 내걸고 독립해 기독교적 금욕주의를 바탕으로 한 ‘덜어 내는 건축’을 20년 내내 추구해 왔다.

지난달 27일 오후 8시 서울 종로구 동숭동 이로재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장식물 하나 없이 간결한 디자인의 조명 아래 스케치가 수북이 쌓인 작업대. 벽을 가득 메운 나무 책꽂이 사이로 무반주 그레고리오 성가가 은은히 울리고 있었다.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자랐어요. 장 칼뱅의 금욕주의에 대한 얘기를 어릴 때 귀가 따갑도록 들었죠. 근검 근면하라고. 10대 때는 많이 반항했지만(웃음) 결국 마음속 깊이 뿌리내린 사상적 배경이 됐습니다. 제 건축적 신념인 빈자의 미학도 거기서 찾았고요.”

승 대표는 서울대 건축학과 석사과정을 마친 뒤 줄곧 김수근과 함께 지냈다. ‘세상에 김수근 건축밖에 없는 줄 알았던’ 15년. 1986년 김수근이 세상을 떠난 뒤 막막함 속에서 동료 건축가들과 논쟁하다가 문득 돌아본 15년 전의 자신 안에서 길을 찾아냈다.

“물신(物神)의 시대잖아요. 근검이 몸에 밴 나는 그 시대가 불편한 것이고. 빈자의 미학은 거창한 궁리 끝에 만들어낸 새로운 얘기가 아니에요. 내 안에 원래 품고 있던 것을 끄집어내 시대의 흐름에 저항하는 건축의 방법으로 삼은 것이죠. 처음 그 말을 찾아낸 게 1992년이니까 이제 17년이 됐네요.”

잠시 이야기를 멈춘 그가 “재미있는 걸 보여주겠다”며 스케치북을 폈다. 작은 종이 두 쪽에 집 9개의 평면과 단면 스케치가 오밀조밀 그려져 있었다. 1961년까지 산 집, 1963년까지 산 집, 우주선을 봤던 집, 누님이 시집 간 집…. 며칠 전에 심심해서 끼적였다는 그림 맨 위에는 6·25전쟁 때 피란가서 여덟 가구가 모여 살았던 부산 집이 있었다.

“다섯 살 때까지 거기서 살았는데 아직 몇몇 공간의 기억이 생생해요. 갓 태어난 동생에게 어머니가 젖을 먹이시는데 옆에서 장난을 쳤던 생각도 나고. 마당 깊은 집에 여러 사람이 모여서 부대끼며 사는 모습이 이상적 공간의 풍경으로 마음속에 남은 거죠. 부산 서구 서대신동3가 184번지. 지금은 도로가 나서 터가 없어졌더라고요.”

네 차례의 건축가협회상과 역시 네 차례의 건축문화대상. 지난해에는 이탈리아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 한국관 커미셔너를 맡아 경기 파주출판도시를 세계에 알렸다. 하지만 그가 한번 살펴보기를 권한 자신의 작품은 2008년 12월 완공한 충남 공주시 사곡면의 ‘전통불교문화원’이었다. 그에겐 기독교가 모태신앙인데 불교에 대한 관심이 원래 많았을까.

“건축을 배울 때 이 땅의 사찰을 수없이 돌아다녔습니다. 전남 순천시 선암사, 경북 안동시 봉정사의 영산암…. 나는 불교건축에 빚진 것이 정말 많은 사람이에요.”

3일 오전 찾아간 전통불교문화원은 찬바람에 지친 방문객에게 따뜻함을 안기는 아늑한 공간이었다. 최소한의 철근콘크리트 구조 위에 장식 없이 검게 칠한 목재를 그대로 드러낸 건물. 소박하지만 딱딱하지 않았다.

“불교의 정신은 ‘비움’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건축과 통한다고 생각해요. 윤회를 멈추고 온전히 없어져 흙으로 편안히 돌아가려 하는 불교적 정신을 공간에 담고 싶었습니다. 자연으로 돌아가기 용이한 재료를 생각하다 보니 콘크리트 사용을 줄이고 나무를 많이 쓰게 됐네요.”

승 대표의 불교건축 설계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1992년 경주의 한 사찰을 설계했지만 기와집이 아니라는 이유 때문에 실제 건물로 짓지 못했다. 그의 설계로 올해 서울 종로구에 세운 템플스테이 정보지원센터와 공주 전통불교문화원에 대해 그는 “한국 불교가 관습의 굴레를 벗고 현대의 생활종교다운 관용을 보여줘 감사했다”고 말했다.

“요즘 서구에서 불교가 각광받고 있잖아요. 그런데 한국에서는 일반 대중을 맞는 사찰건축이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어 안타까웠습니다. 전통불교문화원은 승려의 숙소 겸 수양공간과 일반에 불교문화를 알리는 체험공간을 결합한 곳이죠. 콘크리트 골조에 기와를 얹고 단청을 칠한 건물은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다행히 조계종에서 이해하고 든든히 지원해 줬습니다.”

발굴작업이 필요한 조선시대 가마터를 중앙에 두고 승려와 교인의 공간을 양쪽에 나눴다. 마당을 중심으로 건물이 들어서면서 여러 종교활동을 이루는 불교 사찰의 기본형과 닮은 배치다. 경사진 길에는 계단 대신 간간이 나무판자를 박아 넣어 미끄럼만 덜었다. 여러 채의 건물이 각각 외따로 떨어진 듯 은근히 하나로 묶인 공간이다.

“‘금강경’에 ‘색이나 음성으로 구하고자 하면 참모습을 볼 수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화려하고 독특한 표피에 집착하는 요즘의 건축이 반성의 거울로 삼을 만한 가르침이죠. 공간에 대한 본질적 질문을 잊은 채 표피를 하나의 이론처럼 내세우기까지 하니 안타까운 일이에요. 하지만 뭐든 차면 기울 듯 현대건축도 자연히 곧 본질로 회귀해 새 힘을 찾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김재명 기자

● 승효상 대표는…
△1975년 서울대 건축학과 졸업, 1979년 동대학원 석사 △1974∼1986년 공간연구소 근무, 1986∼1989년 대표 △1989년 종합건축사사무소 이로재 대표 △2007년 한국예술종합학교 객원교수 △1991, 1992, 1998, 2001년 한국건축가협회상 △1993, 1994, 1997, 2000년 한국건축문화대상 △2002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건축가 최초) △2008년 이탈리아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 한국관 커미셔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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