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종합기술원 설립종합기술원 건립 시점에 외환위기“보류-전면취소” 사내 반대론 많아“그룹의 미래 위한 투자” 건설 강행
대전 대덕연구단지에 위치한 애경종합기술원.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사내에서는 추진 중단 여론이 높았지만 장영신 회장이 밀어붙여 완공했다. 장 회장은 “연구개발 관련 투자는 소비가 아니라 생산이며, 회사의 미래에 대한 투자”라고 말했다. 사진 제공 애경그룹
1990년대 중반 60세가 가까워지면서 은퇴하기 전 종합연구소를 만들겠다는 결심을 굳혔다. 우리 회사의 주요 생산시설이 있고, 국토의 중앙부에 위치해 교통이 편리한 대전의 대덕연구단지를 건립 장소로 결정했다. 대덕연구단지는 최첨단 연구시설뿐만 아니라 주변 국공립연구소의 첨단 연구시설 및 정보를 활용할 수 있기 때문에 깊이 있는 연구를 위한 최적의 인프라를 갖추고 있다.
1996년 12월 입주 승인을 받고, 1997년 8월 대전 유성구 신성동 대덕연구단지 내 1만 평에 대한 용지 매입 절차를 마쳐 애경종합기술원 건립의 첫발을 내디뎠다.
회사 내부에서도 연구소 건설을 강행하느냐, 아니면 철수하느냐를 놓고 임원부터 실무자까지 설왕설래가 오갔다. 현재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종합기술원 건설을 보류하거나 전면 취소하고 관련 자원을 다른 곳에 투입해 일단 고비를 넘기자는 분위기로 기울어갔다.
그러나 나는 연구소를 짓는 일은 소비가 아닌 생산이라고 생각했다. 50년 된 애경의 ‘앞으로의 50년’은 연구소가 책임질 것이라고 확신했다, 종합기술원 건립은 단순한 투자가 아니라 애경그룹의 미래에 투자하는 것이었다. 또 불황일수록 기술 개발이라는 성장엔진을 갖출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나는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고 애경종합기술원 건립을 계획대로 추진했다.
이런 과감한 투자 결정의 바탕에는 국가가 금융위기 상황에 놓였지만 애경그룹은 종합기술원을 건설할 수 있는 역량을 갖췄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당시 애경그룹은 부채비율도 양호했고, 종합기술원을 제외하고는 별다른 큰 투자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한정된 자원을 회사의 미래가치에 투입할 여력을 갖추고 있었다.
주변의 많은 우려 속에 최고경영자가 의지를 가지고 추진한 연구소 건립은 단 한 차례의 공사 중단 없이 마무리됐다. 그 결과 애경종합기술원은 최첨단 설비와 쾌적한 연구 환경을 갖추고 2001년 10월 17일 개원했다.
애경㈜ 중앙연구소에서는 생화학 정밀화학 의학 생활용품 화장품 연구를, 애경유화 중앙연구소에서는 생명공학 전자소재 기능성 고분자 등의 연구를, 애경화학 중앙연구소에서는 고분자화학 정밀화학 플라스틱 가공분야, AK켐텍 중앙연구소에서는 무기유기소재, 계면활성제, 유기빌더 등 미래산업 관련 핵심 연구를 하고 있다.
나는 가정주부로, 회사의 경영자로 수십 년을 보냈지만 열정적인 화학도의 피가 남아 있기 때문인지 지금도 종합기술원 방문을 가장 좋아한다.
연구과제에 몰두해 실험을 거듭하는 연구원을 바라보면 즐겁고, 기술원에서 연구테마를 결정하고 제품 개발 계획을 세우는 과정을 참관해도 즐겁다.
애경종합기술원 건설을 결심하고 밀어붙인 게 벌써 10년 전이다. 만약 용단을 내리지 못하고 연구소 설립을 늦추거나 포기했다면 지금 과연 어땠을까 싶다.
<장영신 애경그룹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