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8월 6일 일본 사이타마현 후지미시에서 결혼을 앞둔 41세 남자 회사원이 승용차 안에서 숨진 채로 발견됐다. 차 안에는 타다 만 연탄이 나왔다. 연탄가스를 들이마시고 죽은 것이다. 외견상 단순한 자살로 보였으나 유서도 없었고 연탄을 만진 흔적도 없었다. 시신에서는 알코올과 수면제가 검출됐다. 대대적인 경찰 수사가 시작됐다.
최근 일본에서 결혼을 빙자해 여러 남성들로부터 돈을 가로챈 혐의(혼인빙자 사기)로 30대 여성이 체포됐다. 그런데 이 여성과 가깝게 지낸 6명의 남성이 의문사한 사실이 추가로 밝혀져 논란이 되고 있다. 산케이, 지지통신 등 현지 언론들은 연일 대서특필하며 사건의 추이를 전하고 있다.
● 약혼녀와 밀월여행 떠났다가 시신으로 돌아와…
하지만 그와 교제하던 여성은 경찰에 "그와 주차장에서 싸우고 헤어졌다. 이별 충격 때문에 자살한 게 아니냐"고 잡아뗐다. 남자가 죽은 자동차 안에서는 여자의 지문도 발견되지 않았다. 심증은 갔지만 물증이 없었다.
하지만 사이타마현 경찰은 집요했다. 그날부터 24시간 여자를 관찰하며 주변을 샅샅이 뒤졌다. 경찰의 예감은 적중했다. 여자는 회원제 결혼 정보 사이트에 가입하고 결혼을 명목으로 남자들의 돈을 뜯어내고 있었던 것이다. 나가노현의 50대 남성에게서 약 190만 엔(약 2500만원), 시즈오카현의 40대 남성에게 130만 엔(약 1700만원)을 사취했던 것.
9월 25일 여자는 경찰에 체포돼 10월 21일 사기 혐의로 기소됐다. 그리고 또 다른 남성 2명에게서도 총 210만 엔(약 2700만원)을 편취한 혐의로 추가 기소됐다.
여자가 체포되자 수사는 급물살을 탔다. 여자가 죽은 남자에게 "차로 데리러 오라"고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를 보낸 것이 포착됐다. 또한 남성이 죽기 며칠 전 여자에게 현금 470만 엔(약 6100만 원)을 보낸 것도 밝혀졌다. 죽은 이와 함께 발견된 연탄도 여자가 인터넷에서 산 것과 동일했다.
● 교제하던 남성들 연달아 이상한 죽음
지난 5월에는 지바현 노다시에 사는 80세 남성이 자택에 불이 나 숨졌다. 여성은 이 노인의 집에 간병인으로 출입하고 있었다. 화재 당일 이 여성이 노인의 현금 카드를 사용해 180만 엔을 찾아간 사실이 밝혀졌다. 지난해 남성의 계좌에서 여성의 계좌로 총 80만 엔이 흘러들어간 사실도 확인됐다. 불에 탄 남자의 집에서는 연탄이 발견됐고 시신에서도 수면제 성분이 나왔다. 이웃 주민들은 노인이 도우미가 필요할 정도로 거동이 불편하지 않았다고 입을 모았다. 노인은 젊은 사람처럼 컴퓨터도 사용하고 영어도 아주 잘했다고 한다.
게다가 지난 1월 도쿄 오메시에서 연탄을 피워놓고 집에서 숨진 50대 남성이 죽기 전 이 여성에게 1700만 엔(약 2억2000만원)이라는 거금을 입금한 사실도 밝혀졌다. 2007년 지바현에서 재활용 매장을 운영하던 70대 남자도 여자에게 7400만 엔(약 9억6000만원)을 입금하고 나서 갑자기 자택 2층에서 사망했다.
사이타마현 경찰과 지바현 경찰은 서로 정보 교환을 하며 공조 수사를 벌이고 있다. 이 외에도 여자와 알고 지내던 수도권 남성 2명의 죽음도 의심을 받고 있다.
여자는 현재까지 확인된 것만 약 1억 엔(약 13억원)의 돈을 사취했다. 이 돈으로 월세가 25만 엔인 집에 살면서 벤츠를 굴리고 3개월 강습료가 70만 엔인 프랑스 요리 교실에 다니는 등 호사스런 생활을 하면서 자신의 블로그에 자랑삼아 사진을 올려놓곤 했다.
● 결혼 사이트 회원들에게 '학비 대 달라' 읍소
여자는 북방 홋카이도의 한 낙농 소도시에서 태어났다. 할아버지는 지역의회 의장까지 지낸 유지였다. 그는 여기서 중고교를 졸업하고 도쿄의 사립대에 들어갔다. 하지만 대학생활의 낭만은 '등록금 미납 제적'으로 1년 만에 종지부를 찍었다. 7년 후 여자는 사기꾼이 됐다. 인터넷 장터에 컴퓨터를 올려놓고 남의 돈 10만 엔을 가로챈 것. 이 혐의로 2년 뒤인 2003년 그는 체포됐다.
여자는 2006년 월세 13만 엔인 도쿄 이타바시의 아파트에 거주했다. 이웃들에게는 자신의 직업을 피아노 강사, 푸드 코디네이터라고 소개했다. 지난해부터는 외제차를 사더니 지난 5월에는 벤츠로 차종을 바꿨다. 8월에는 월세 25만 엔을 내는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여자가 생활수준을 높여가며 눈을 돌린 곳은 바로 결혼 사기사이트였다. 여성에게 사기는 하루 일과였다. 그녀는 여러 개의 가명을 쓰며 가난한 대학원생인 양 행동했다. 그리고 "심각하게 결혼을 생각하는 대학원생입니다. 학비 미납으로 졸업을 못하고 있어요"라는 e메일을 써서 남자들에게 보냈다. 돈 보내길 주저하는 남성에게는 "졸업만 하면 당신에게 전력을 다 하겠어요"라고 말했다.
요리 전문 블로그를 운영하며 현모양처 이미지를 심어 주는 센스도 잊지 않았다. 8월 사망한 남성이 마지막으로 먹은 음식도 여자가 만든 비프 스튜였다. 또 '초등학생 때 사랑하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노인을 보면 신세를 갚고 싶다는 충동을 느낀다'고 노인들이 솔깃해 할 말도 썼다. 여자는 블로그에 굵게 웨이브 진 예쁘장한 얼굴 일부가 나오는 주방 사진도 올려놓았다. 하지만 이웃 주민들은 '턱 선이 전혀 다르다'고 증언해 다른 여성의 사진일 가능성도 있다.
여자는 불륜 상대를 찾는 사이트로 활동 반경을 넓혀갔다. 여기서는 협박 수법을 썼다. 83세 노인과 관계를 가진 후에는 부인에게 폭로하겠다고 위협해 현금 백여만 엔을 받아 챙겼다. 피해 남성은 망신을 두려워해 신고하지 않았다. 여성은 주로 신고를 꺼릴 정도로 사회적인 지위가 높은 인물들을 노린 것으로 보인다.
수사 관계자는 언론 인터뷰에서 "피해자에겐 죄송하지만 40대 이상 사리 분별 있는 남성들이 왜 저런 여자에게 걸려들었는지 모르겠다"며 "인터넷에서 결혼 상대를 찾는 것도 그렇고, 상대방을 어디까지 알고 백만 천만 엔 단위의 돈을 척척 보낸 건지 이해할 수 없다"고 혀를 찼다.
경찰은 이번 사건에 대해 '살인'의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으나 지문이나 다른 증거가 없어 애를 먹고 있다. 경찰은 블로그, 휴대전화 통화 기록, 수면제 성분, 연탄 구매 현황 등 단편적인 기록을 모으면 증거로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단 휴대전화 통신 기록은 통신회사에 3개월밖에 보존돼 있지 않아 8월 이전의 사망 사건은 더 이상의 수사가 어려울 수 있다. 수사가 장기화되고 본인이 입을 열지 않으면 난항이 불가피하다.
최현정 동아닷컴 기자 phoeb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