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아니스트 백혜선-박종훈-김정원 씨 독주회
《두터운 팬 층을 지닌 피아니스트 세 사람이 ‘욕심껏’ 꾸린 프로그램으로 늦가을 청중을 찾아온다. 18세기 모차르트에서 20세기 부소니까지 넓은 시대를 아우르거나(백혜선 김정원 씨) 단 하나의 곡집에 집중하면서(박종훈 씨) 함부로 도전할 수 없는 까다로운 레퍼토리를 엮었다. 특히 작곡가 ‘프란츠 리스트’(1811∼1886)는 세 사람의 리사이틀을 묶는 공통분모다. 리스트는 상상을 초월하는 기교를 피아노에 도입해 19세기 ‘피아노의 귀신’으로 불렸던 주인공.》
15일 세계무대 데뷔 20주년 기념연주회에서 리스트의 피아노 소나타 b단조를 연주하는 피아니스트 백혜선 씨. 그는 “이 대곡에는 리스트가 평생 고뇌한 선악의 투쟁이 담겨 있다”고 설명했다. 사진 제공 CMI
“음악학자 앨런 워커가 지은 리스트의 삶에 관한 책들을 읽고 있어요. 리스트의 편지를 모은 책도 읽었죠. 그의 작품세계를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요.”
3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의 한정식집에서 백혜선 씨를 만났다. 두 아이를 기르며 활동 중인 미국 뉴욕에서 바로 들어오는 길이라고 했다.
소나타 b단조는 기교의 어려움도 대단하지만 광포한 주제와 위로하는 듯한 모티브가 한없이 교차하는, 극적이면서 난해한 작품으로도 정평이 나 있다.
“이 작품을 연습하다 보면 작곡가가 ‘선과 악의 투쟁’을 표현하려 했다는 확신이 들어요. 당시 그의 편지에도 ‘인기에 영합할 것인가, 진실한 음악을 쓸 것인가’라는 자기분열적인 고민이 많이 나타나죠. 인류 보편의 주제를 다룬 만큼 까다로운 껍질을 깨면 깊이 와 닿는 작품입니다.” 3만∼6만 원. 02-518-7343
○ 박종훈 씨 “도전도 재미”
“단거리 전력질주를 12번 반복하는 느낌이에요.”
박종훈 씨의 이탈리아 피렌체 자택에 3일 전화를 했다. 그는 16일 오후 8시 서울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에서 리스트 ‘초절(超絶)기교 연습곡’ 12곡 전곡을 연주한다. 국내 연주자로서는 최초다. “왜 하느냐”고 했더니 “도전도 재미잖아요”라고 받아쳤다.
○ 김정원 씨 “주력은 쇼팽에”
연주회 참가차 일본 도쿄에 체류 중인 김정원 씨는 3일 쇼팽의 소나타 2번을 연습하다 전화를 넘겨받았다. 그는 22일 오후 5시 대구 수성아트피아를 시작으로 인천 광주 대전 창원 수원 성남 부산 전주 고양 서울에서 마라톤 순회 콘서트를 연다. 12월 31일 오후 8시 서울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에서 막을 내린다.
그가 마련한 프로그램은 언뜻 백혜선 씨의 곡목을 연상시킨다. 부소니가 편곡한 바흐의 코랄프렐류드로 막을 열고, 모차르트의 곡인 ‘작은 별 변주곡’도 있다. 그러나 방점은 쇼팽에 찍힌다. 야상곡 작품 27-2와 소나타 2번을 후반부에 배치했다. 그는 “내년 탄생 200주년을 맞는 쇼팽을 콘서트에서 미리 기념하려 했다”고 말했다.
리스트 작품으로 그가 마련한 곡은 초절기교 연습곡 중 열한 번째 곡인 ‘저녁의 하모니’와 ‘베르디 리골레토 주제에 의한 패러프레이즈’. 후자는 젊고 힘 넘치는 피아니스트들이 앙코르곡으로 종종 연주하는, ‘서커스적인’ 화려한 작품이다.
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