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국민아이돌’ 모닝구무스메의 날개없는 추락

전성기 모닝구무스메 공연장면. 연합뉴스 ☞ 사진 더 보기
1997년 결성돼 12년째 활동하고 있는 일본의 여성 아이돌 그룹 모닝구무스메. 한 때 일본의 '국민 아이돌'이라 불릴 정도로 남녀노소의 구분 없이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받으며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음반, DVD, 사진집 등 이들과 관련된 각종 상품이 쏟아졌고 이들은 일본 골든디스크대상, 레코드대상 등 각종 가요 시상식에서 트로피를 휩쓸었다. 대표곡인 '러브머신'(1999년)은 약 165만장의 판매량을 기록할 정도로 돌풍을 일으키며 '국민가요'로 사랑받았다.
국내에서도 모닝구무스메의 인기는 대단했다. 몇 년 전까지 국내 일본가수 팬카페 중 가장 많은 회원을 보유했고 TV 뉴스에 소개될 정도였다. 모닝구무스메의 컨셉트와 이미지를 차용한 그룹이 등장하기도 했다.
스타의 인기는 대부분 시간이 지나면서 식기 마련이다. 그러나 J-POP계를 뒤흔들며 여성 아이돌 역사에 새로운 장을 연 주인공인 모닝구무스메의 급속한 몰락은 단지 시간의 탓만은 아니다. 모닝구무스메에겐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 '가입'과 '졸업'의 연속…팬들은 지쳤다
최근 애프터스쿨 멤버 소영이 그룹에서 '졸업한다'는 소식이 화제가 된 바 있다. 일반적으로 그룹 활동을 하다 여러 가지 이유로 그만두게 될 경우 '탈퇴'라는 표현을 쓰기 마련이기에 '졸업'이란 단어가 생소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이 '졸업'이란 말은 모닝구무스메가 이미 10여 년 전부터 써오던 표현이다. 결성 당시 5인조 그룹으로 출발했던 모닝구무스메는 이후 새 멤버가 가입하고 기존 멤버가 졸업하는 방식으로 계속 바뀌었다. 지금은 데뷔 당시 멤버가 한 사람도 없다.
모닝구무스메가 '국민 아이돌'로 성장하고 전성기를 맞은 것은 3기 고토 마키가 가입하면서부터다. 가입 당시 14세 소녀인 고토 마키는 귀여우면서도 섹시한 매력을 뽐내며 순식간에 톱스타가 됐다.
고토 마키가 가입한 뒤 모닝구무스메의 음악 색깔도 크게 변화했다. '러브 머신'을 시작으로 엽기적인 가사와 발랄한 멜로디가 모닝구무스메 음악의 트레이드마크처럼 굳어졌다. 방송인 현영이 번안해 부른 독특한 노래 '연애혁명'도 모닝구무스메가 한창 주가를 올릴 때 부른 '러브 레볼루션 21'이다.
고토 마키의 성공을 계기로 모닝구무스메의 새 기수 선발과 기존 멤버의 졸업은 더욱 활발해졌다. 4기, 5기 멤버는 각각 4명이나 뽑혔다.
또 모닝구무스메의 소속사인 '하로 프로젝트'는 이 그룹의 일부 멤버와 다른 솔로 가수, 그룹을 뭉쳐 '미니모니(미니 모닝구무스메)', '푸치모니(쁘띠 모닝구무스메)' 등 유닛을 만들기도 했다. 이런 과정 자체가 이슈가 됐고 멤버들의 얼굴이 계속 바뀌며 새로운 매력을 갖추게 하는 원동력이 됐다.
특히 고토 마키, 아베 나츠미 등 모닝구무스메의 소위 '에이스' 멤버가 줄줄이 그룹을 떠나면서 이들을 좋아하던 사람들도 팬으로서의 활동을 졸업했다.
또 멤버 각자가 외모, 이미지, 나이, 성격 등 모든 면에서 뚜렷한 개성과 차이를 보인 과거와 달리, 5기 이후 새로 뽑히는 멤버들은 중년 남성팬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롤리타 컨셉트'에 맞춘 미소녀들로만 구성됐다. 귀엽고 예쁜 얼굴, 작은 체구의 비슷비슷한 이미지를 지닌 어린 소녀들은 자신만의 뚜렷한 색깔을 내지 못했다.
털털한 성격의 맏언니 나카자와 유코, '자폭 개그'를 구사하던 야스다 케이, 키가 크고 맹한 것이 특징인 이이다 카오리, 보이시한 매력의 요시자와 히토미 등 예쁘장한 멤버 뒤에서 자신만의 개성을 뽐내던 이들의 부재는 모닝구무스메의 인기 추락을 부채질했다. 이제 일본에서 모닝구무스메에 열광하는 팬들은 주로 롤리타 문화에 푹 빠진 오타쿠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모닝구무스메 전 멤버 카고 아이(왼쪽)와 고토 마키 ☞ 사진 더 보기
▶ 엽기만을 추구한 음악과 춤…식상하다
데뷔 당시 모닝구무스메의 음악은 '아침의 아가씨'라는 뜻을 지닌 그룹 이름처럼 풋풋한 느낌의 곡이 많았다. 프로듀서이자 작곡, 작사가인 층쿠는 1990년대 인기 비주얼 록그룹 샤란Q의 보컬이자 뮤지션으로 활동한 경력을 살려 자신의 음악적 감각을 모닝구무스메 노래를 만드는데 발휘했다.
그룹이 결성될 당시 인디음반으로 선보인 '아이노타네', 1998년 정식 데뷔곡인 '모닝구코히(morning coffee)' 등은 모두 서정적인 멜로디와 멤버들의 화음이 돋보였다. 댄스곡인 '다이떼 HOLD ON ME!', 감성적인 느낌의 발라드 'Memory~세이¤노 히카리' 역시 한 번만 들어도 귀에 쏙쏙 들어오는 멜로디가 특징이었다.
모닝구무스메의 노래 분위기는 고토 마키가 영입된 이후 이미지가 '엽기발랄'로 바뀌면서 크게 달라졌다. 7번째 싱글 '러브머신'을 시작으로 '코이노 단스사이토' '핫피 사마 웨딩구(happy summer wedding)' 등 상식을 벗어난 파격적인 내용의 가사와 멜로디의 곡들이 이어졌다.
일각에선 이 같은 노래가 선풍적인 인기를 모으는 것에 대해 '불황에 빠진 일본 사회가 현실에서 도피하려는 현상'이라는 해석까지 내놓았다. 처음 들었을 때엔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모닝구무스메의 노래들은 다양한 컨셉트, 의상과 어울려 인기를 모으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엽기와 파격은 금세 질리기 때문에 생명력이 길지 않다. 초반엔 눈길을 끌지만 난해한 멜로디의 노래와 소녀들의 다듬어지지 않은 목소리는 듣는 이들에게 신선한 매력을 주지 못했다.
멤버들의 각종 스캔들로 인한 이미지 추락도 인기가 떨어지는데 한 몫을 했다. 겉보기에는 귀여운 소녀 같은 미성년자 멤버들의 흡연, 음주 사진이 잇따라 폭로되면서 그룹 자체의 이미지가 나빠진 것이다.
이미 그룹을 졸업한 뒤의 일이지만 깜찍한 외모로 인기가 높았던 카고 아이가 유부남과 불륜으로 상대의 아내로부터 고소를 당하기도 했다. 이 밖에도 속도위반으로 어린 나이에 결혼을 하거나 남자 문제로 팀을 탈퇴하는 사례가 이어져 안티 팬이 늘어났다.
데뷔 당시부터 '모닝구무스메의 얼굴'로 불린 아베 나츠미가 시집을 내면서 다른 사람의 작품을 도용한 것도 그룹 이미지에 먹칠을 하는 계기가 됐다. 이 같은 불상사가 끊이지 않으면서 팬들은 자연스레 '국민 아이돌'을 외면했다.
모닝구무스메는 중국 진출을 노린 것인지 8기 멤버로 중국인 소녀 2명을 발탁하는 등 새로운 전환점을 모색하고 있다. 하지만 노래나 춤 실력이 아닌 이미지로 승부하는 아이돌의 특성상, 이미 식상해진 모닝구무스메가 다시 정상에 오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남원상 기자 surrea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