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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2/커버스토리] 김태희를 위한 변명 ①

입력 | 2009-11-06 14:47:20




왜 나는 그녀를 위해 변명을 하려 할까.

그녀의 이름을 인터넷, 특히 검색엔진이 막강하기로 정평이 난 구글에 키워드로 넣고 찾아보자. 무려 573만개의 한글 페이지가 검색된다.

이번에는 이름 앞에 '연예인'이란 단어를 붙여 검색했다. 두 개의 단어가 들어가는 검색 조건을 만족하는 한글 웹페이지는 확실히 줄었다. 그래도 332만개다.

이것이 바로 김태희다. '그냥 바라만 보고 있어도 흐뭇하다'는 이른바 '절대미모'의 소유자. 여기에 서울대라는 출신학교의 '아우라'까지 갖춘 당대의 스타 김태희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이런 수치로 나타났다.

"왜 내가 그녀를 위한 변명을 할까"

김태희가 이른바 '서울대 출신 연예인'으로 주목받기 시작하던 2001년, '될 성싶은 떡잎'을 금방 알아보는 전설적인 눈썰미의 한 선배는 그녀를 CF에서 보고 이렇게 말했다. "잰 숙명적으로 뜰 아이야."

그래서 사실 김태희에 대해 글을 쓸 생각이 없었다. 스타가 되기까지 드라마틱한 히스토리도, 가슴 아픈 좌절과 절망도 없는, 스타가 되는 것이 숙명과 같다는 사람에 대해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쓴단 말인가.

드라마 ‘아이리스’의 ‘최승희’역할은 김태희 연기 인생에 중요한 터닝 포인트가 되고 있다. [화보]톱스타 총출동…첩보 드라마 ‘아이리스’ 쇼케이스 현장



또한 솔직히 김태희란 이름을 생각할 때 자동적으로 떠오르는 머리에 강하게 각인된 드라마나 영화도 크게 없었다. 이영애는 <대장금>이 있고, 배용준은 <겨울연가>가 있다. 장동건과의 로맨스로 요즘 화제가 된 고소영은 <비트>가 있다. 그런데 김태희는 CF에서 'V라인 얼굴'을 자랑하며 예쁘게 미소 짓는 모습만 먼저 떠올랐다.

가만, 여기서 다시 그녀의 이름에 다른 두 단어를 묶어 검색을 했다. '김태희 연기력 논란'. 이번에는 108만개가 검색된다.

도대체 이 아이러니는 무엇인가. 단역까지 포함해도 지금까지 4편의 영화와 6편의 드라마에 출연한 게 전부인 여배우의 연기력을 두고 이렇게 많은 이야기가 온라인에 떠돈다는 것. 그녀의 연기력이 대한민국 대중문화에 얼마나 심각한 영향을 미쳤기에 이리 난리였을까. 그럼 이번에는 스타라면 누구나 하나 이상은 갖고 있다는 루머와 그녀를 묶어 검색했다. 46만개.

그래서 이 글을 쓰게 됐다. 현역 연기자 중 세 손가락 안에 드는 미모를 지녔다고 평가받으면서, 한편으로는 마치 천형처럼 '연기력 논란'이란 꼬리표를 달고 다녀야 했던 그녀. 또 특별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적도 없는데 46만개의 루머 관련 글이 있는 그녀를 위해 누군가 한 명쯤 변명해주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았다.

그녀의 불행, 너무 일찍 신화가 된 죄(罪)

어찌보면 김태희는 연예인으로 데뷔하던 첫 걸음부터 '불행'했다.

'김태희는 신인때부터 불안했다?' 그녀의 팬들은 펄쩍 뛸지 모른다. 그녀가 처음 등장했을 때 들었던 숱한 찬사와 환호를 당신은 모르냐고….

안다. 그렇기 때문에 불행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여기서 '불행'이란 대중의 관심과 미디어의 주목에 목말라하는 대다수 스타 지망생들의 겪는 그것과는 다르다.

김태희의 존재감을 각인시킨 SBS 드라마 ‘러브 인 하버드’. 출처·SBS



김태희의 불행은 오히려 활동 초기부터 지나치게 많은 관심과 주목을 받고 화제와 뉴스의 주인공으로 지냈다는 점이다.

물론 대중의 관심은 연예인에게는 필수불가결한 것이다. 정상에 있는 소수에게만 영광과 부가 집중되는 이른바 승자독식(Winner takes it all)의 스타시스템에서 대중의 관심은 그 높은 곳에 오르려고 애쓰는 사람들에게 절실한 자양분이다.

하지만 그것도 정도가 있고 때가 있는 것이다. 김태희에게는 본인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너무 빨리, 그리고 많이 쏟아졌다.

기억을 더듬어 그녀가 연예인으로 활동을 시작했던 2000~2001년을 돌아보자. CF 모델로 얼굴을 알리기 시작했지만 "남편은 아내하기 나름"이라는 명 카피로 화제가 됐던 최진실이나, 섹시한 허리춤을 보여주며 눈길을 확 끌었던 전지현의 등장과는 달랐다. 프로필을 검색해 보면 '아, 이런 CF에 나왔지'라고 고개를 끄덕이지만, 앞의 두 사람이 나온 것처럼 특별히 오래 기억에 남는 '임팩트' 있는 광고는 아니었다.

이런 그녀가 유명해진 것은 다른 요소, 바로 '서울대 의류학과'라는 학력이었다. 많은 이들이 이른바 간판 위주의 우리 사회 풍토를 정색하며 개탄하지만, "저 CF에 나오는 신인, 알고 보니 서울대 학생이래"라는 말을 들으면 다시 한번 신경을 쓰고 바라보게 된다.

이렇게 관심을 갖고 지켜본 그 신인의 얼굴이 놀랄말큼 예쁘다는 걸 느끼면 '김태희'라는 이름 석자는 자연스레 잔상이 길어진다.

연기자로서는 단역, 조연을 거치는 중인 풋내기인데도 쏟아지는 관심은 어지간한 주연급보다 더했다. 그러다가 덜컥 한 작품의 주연을 맡자 난리가 났다. '좋다' '나쁘다' 호불호가 엇갈리는 기사와 평들이 쏟아졌다.(300만 개가 넘게 검색되는 한글페이지가 괜히 나왔겠는가)

10여 편의 출연작, 그리고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햇수도 6~7년에 불과한 김태희가 몇 배 많은 작품 활동을 한 연기자들과 비슷한 중량감으로 와닿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녀에 대한 대중의 시선은 ‘서울대’라는 학벌과 ‘탁월한 미모’에만 집중된다. 스포츠동아 양회성 기자 ☞ 사진 더 보기



그러다보니 김태희는 어느새 신화가 되고 있다. 비슷한 또래, 비슷한 연차의 다른 연기자들은 현재 진행형으로 이런 저런 활동과 도전을 하고 있다. 때론 말도 안되는 선택을 하기도 하고, 시행착오라 하기엔 뼈아픈 실수도 한다. 하지만 최소한 그들은 계속 역동적으로 움직인다.

김태희보다 훨씬 오랜 경력을 가진 연기자들도 스스로의 틀에서 벗어나기 위해 변화를 한다. 멀리 찾을 것도 없다. KBS 2TV 새 드라마 <천하무적 이평강>의 예고편에서 천연덕스럽게 브아걸의 '시건방춤'을 춘 최명길, <공주가 돌아왔다>에서 볼썽사납게 망가지는 것을 서슴지 않았던 황신혜, 오연수를 생각해 보라.

하지만 김태희는 이런 기회를 갖기가 어렵다. 많지 않은 필모그래피 안에서 나름 변화를 시도했다고 하지만 그것은 사람들의 머리 속에 만들어진 정형화된 틀 안에서의 행보일 뿐이다. '김태희는 이런 연예인이다' '서울대 출신 엘리트다' '공부도 잘하고 얼굴도 예쁜…' 등등의 사방에 쳐진 그런 벽 안에서만 움직이면서 미녀스타의 신화가 될 것을 강요당했다.

그녀는 정말 연기를 못하나?

그럼 이제 본질적인 질문을 해보자. 그녀는 정말 연기를 못하는가.

김태희는 현재 KBS 2TV <아이리스>에서 국가안전국(NSS)의 프로파일러 최승희 역으로 출연하고 있다. 드라마 소개에 보면 이병헌과 멋진 로맨스를 펼치면서 한편으로는 빠른 두뇌회전과 냉철한 판단으로 테러를 사전에 차단하는 활약을 펼치는 인물로 나온다.

<아이리스>에 출연한 이후 김태희의 연기에 대한 논란은 많이 줄어들었다. 이전에는 출연할 때마다 혹독하게 시달렸는데, 이번에는 "노력하는 게 보인다", "많이 늘었다"며 긍정적인 평가가 꽤 늘었다. 아직도 그녀의 연기력에 대해 물고 늘어지는 누리꾼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 정도면 정말 큰 변화다.

‘아이리스’ 출연 직후 김태희 연기에 대한 논란은 많이 줄었다. 스포츠동아 DB [화보]톱스타 총출동…첩보 드라마 ‘아이리스’ 쇼케이스 현장



그녀를 캐스팅한 후 내심 시청자나 언론의 평가에 대해 조마조마했던 제작진도 이런 반응에 고무되고 있다. 물론 가장 기뻐하는 기색이 역력한 것은 그녀의 소속사와 김태희 본인이다.

그녀와 4년 넘게 함께 해온 소속사의 담당 실장은 "예민한 성격이 아니어서 자신의 연기력에 대한 세간의 지적을 담담히 수용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아이리스> 제작 발표회 때 '쿨'하게 "열심히 했다"고 말하면 될 것을 애써 어떤 자세로 연기에 임했고, 어떻게 준비하고 어떤 각오로 할 것이라고 일일이 설명하는 것을 보면 부담감은 분명히 있었던 것 같다.

조금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아이리스>에서 최승희를 연기하는 김태희에 대한 평가는 결코 연기를 잘한다는 찬사가 아니다. 전보다 나아졌다는 발전의 의미이자, 예상했던 것보다 좋아졌다는 비교의 결과일 뿐이다.

강렬한 자신만의 포스로 캐릭터를 그녀만의 색깔로 물들이던가, 아니면 반대로 자신과 최승희가 하나가 되는 '물아일체'(物我一體)의 몰입 연기를 보여주는 그런 경지는 아니다.

무엇보다 '연예인 김태희'가 아닌, '연기자 김태희'로서 특징지을 수 있는 그 무엇을 그녀가 아직 찾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미모와 연기의 어쩔 수 없는 불균형

그래서 한 걸음 떨어져서 김태희의 연기를 지켜보면 여전히 조마조마한 심경이 들 때가 많다. 특히 이제는 유들유들하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여유가 넘치는 이병헌과 함께 등장할 때 서로 완벽하게 맞는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뭐, 이런 부조화는 두 사람이 연습을 게을리 했다거나, 아니면 사이가 나빠서 생기는 것은 아니다. 단지 둘이 가진 연기 폐활량의 차이 탓이다. 이병헌이 한 호흡에 십여m의 거리를 갈 수 있는 깊은 폐활량을 가진 연기자라면, 김태희는 아직 그 절반이 안 되는 폐활량이다.

그 연기 폐활량의 차이. 어쩌면 그녀가 그동안 들어온 연기력 논란의 핵심은 대사, 동작, 표정 처리와 같은 단편적인 요소를 떠나 이 점일지 모른다. 그렇다면 논란의 원인 제공자는 그녀가 아닌 주변이다.

이제 겨우 50m 풀을 한번 왕복할 수 있는 사람에게 200m, 800m, 1000m를 요구한다면 문제는 수영하는 사람이 아닌 그런 것을 주문한 쪽에 있는 것이다.

[O2/커버스토리] 김태희를 위한 변명 ②

김재범 / <스포츠동아> 엔터테인먼트부장 oldfield@donga.com